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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와다리19

강경 황산나루 옛 포구의 쇠락을 슬퍼할 필요없다 저 황홀한 노을도 하루의 소멸이 아닌가 충남 논산시 강경읍 황산나루(강경포)의 노을. 금강을 물들이며 붉게 타는 노을은 '아름다운 소멸'을 생각하게 한다. 논산시 제공 황산대교를 지났다. '갱갱이'다. 갱갱이는 충남 논산 근방에서 강경(江景)을 이르는 말. 강경을 충청도 사투리로 길게 발음한 거란다. 해가 금강을 건너 서해로 스르르 넘어간다. 노을이 곱다. 읍내에 들어서자 젓갈 냄새가 온몸에 감겨온다. 향긋하다. 비린내를 풍길 것이란 예상이 보기좋게 빗나갔다. '갱갱이'는 정겨운 우리말임에도 요즘 쓰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한다. 소멸 직전의 토속어 한마디가 강경포(황산나루)의 성쇠를 대변하는 듯하다. 포구가 쇠락하면서 말이 헐거워졌고, 동시에 삶이 팍팍해졌다. 강경포는 .. 2007. 12. 2.
밀양 배다리 1500여년 밀양 나루史, 이젠 배 없이 흐른다 배가 무겁다. 한쪽으로 쓸린다. 이고 지고 어디를 가시나. 지게를 진 사람, 연장을 든 일꾼, 상투 틀고 탕건 쓴 양반, 머리에 수건 두른 여인네. 모두 카메라를 의식한 표정들. 까까머리 아이의 천진한 눈빛, 배고픔을 노려보는 듯. 가운데 앉은 이는 퉁소를 부시나 피리를 부시나. 뱃전의 장정은 돌아앉아 강물을 보고, 사공은 어깨 빠져라 노를 젓는다. 밀양강(남천강) 푸른 물에 영남루와 능수버들이 두둥실. 옆의 빈 배는 누굴 태우려나…. 1910년대의 수묵담채 같은 사진 한 장. 조선시대 끝자락이 잡힐듯 말듯, 불러도 대답없는 나룻배. 아스라한 흑백의 대비가 추억의 누선을 건드린다. 100여년 전 영남루엔 사람이 드물구나. 영남루 좌우의 능파각과 침류각, 오.. 2007. 11. 29.
의령 정암나루와 정암교 나룻배 다시 띄워지면 우리님 마중이나 갈거나 "저게 솥바위 아잉교!" 의령 정암리 주민인 김호 씨가 정암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 씨는 50년 넘게 정암과 정암교를 지켜봤다고 한다. 정암 왼쪽이 정암나루터다. 솥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것도 무쇠 가마솥이. 장작불 땐 무쇠솥등은 얼마나 따뜻하던가. 끓어넘치는 솥의 눈물, 가마솥맛 소고기국은 또 어떻고…. 솥은 인류를 먹여살린 도구다. 석기시대엔 돌솥이, 토기시대엔 토기솥이, 청동기시대엔 동복(銅腹)이, 철기시대엔 철복(鐵腹)이 밥을 해 냈다. 이후 알루미늄제·스테인리스제 솥이 나오고 첨단 전기압력솥이 등장했지만, 진짜 밥맛은 역시 무쇠 가마솥이다. 세발 달린 솥을 말하는 '정(鼎) 자'는 뜻풀이가 아주 좋다. 정보(鼎輔)는 삼정승을 뜻함이요, 정.. 2007. 11. 28.
장회나루서 두향을 찾다 퇴계의 고운 연인 푸른 물에 몸던질때 못견딜 그리움도 함께 묻었다 '퇴계를 사랑한 여인' 기생 두향의 애틋한 전설이 서린 충북 단양의 장회나루. 강 건너 산 기슭에 두향의 묘(□표시)가 보인다. 박창희 기자 "두향아, 얼굴이 어둡구나. 무슨 일이 있는 게냐?" "아무 일도 아니옵니다." "허면 내가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그런 것이냐?" "…." 두향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먹을 갈던 벼루와 화선지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화선지에 눈물이 스며들었다. 퇴계 선생이 경상도 풍기로 떠난다는 소식은 두향에게 청천벽력이었다. 9개월만의 이별. 견뎌야 한다는 마음과 잊어야 한다는 마음이 맹렬하게 싸웠다. 목숨같은 정을 끊고 어떻게 견딘단 말인가. ● 상사별곡(相思別曲) 퇴계 이황(1501∼1570).. 2007. 11. 26.
늑도와 창선 · 삼천포대교 전설속 마부할매는 꿈을 이루고 현실의 늑도주민은 배가 그립다 할매가 빨래할 때 사용하던 서답돌로 섬과 삼천포를 잇는 징검다리를 바다에 놓으려 했지 물론 전설이지만 언젠가는 다리가 놓일거라 믿었어 오랜 세월을 깜냥껏 살아온 섬사람들 다리 생겨 좋긴 한데 먹고살기 바빠져 예전같잖아 배와 함께 돌아가던 섬 일상도 이젠 여유가 없지 늑도 주민 천정남 씨가 마부할매 전설이 서린 징검다리 돌무더기를 가리키고 있다. 전설의 조화인가 싶게, 늑도에도 다리가 놓였다. 박창희 기자 늑도에 가 보셨는지. 경남 삼천포항과 남해 창선 사이의 작은 섬. 면적이 0.46㎢,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뛰면 20분 만에 닿는 곳. 말 굴레(재갈)를 닮아 굴레섬(勒島)이라 이름된 곳. 겉으로는 별로 볼 것이 없다. 횟집 너댓 개와 올망.. 2007. 11. 25.
화개나루와 남도대교 섬진강 물빛 짙어지면 봄님 온다더니 젖먹이처럼 늘어섰던 나루 없고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진 '줄배'엔 장꾼 대신 알음알음 관광객만 찾아 이젠 남도대교가 兩道 사투리 이어 "다시 노를 저을 수 있다면…." 전남 구례군 운천나루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손영일 씨가 섬진강 줄배의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이 나룻배는 평상시 할일이 거의 없다. 박창희 기자 '옥화주막'은 시끌벅적했다. 한 무리의 길손들 틈에 장꾼들이 끼어 막걸리를 들이켜고 있었다. 식탁에는 희미하게 김이 나는 재첩국과 아사삭한 은어튀김이 올려져 있다. 육자배기라도 터져나올 법한 주막 문전에서 '옥화'는 파전을 부치느라 바빴다. -장사가 잘 됩니까? "잘 되지요. 항시 장이 서니까예." -하루에 얼마나 팝니까? "짬이 없지예. 평일엔 한 백명, 주말엔 .. 2007. 11. 23.
웃개나루와 남지철교 굴곡의 세월 흐르는 강위로 다시 희망이 가로지르고… "일제 잔재라고 말도 많지만 우리 피땀서린 엄연한 삶의 일부" 낙동강 민초들 애환과 추억의 상징 나루터 옛 명성은 역사속 기록만 신·구 철교, 상생으로 나아가야 ●먼 데서 온 손님 2006년 7월16일, 창녕 남지철교에 귀한 손님 두 분이 찾아왔다. 일본인 나가지마(中島) 여사와 그의 장성한 아들이었다. 60대 중반의 이 여인은 감회에 젖어 철교를 살폈다. 녹슨 철골을 손으로 만지고 리벳 이음까지 관찰하는 모습은 여느 관광객과 달랐다. 이들은 놀랍게도, 일제시대 남지철교와 의령 정암교를 설계한 이야마(井山安藏) 씨의 딸과 손자였다. 6·25전쟁 직후 폭파된 남지철교를 배경으로 여학생들이 사진을 찍었다. 교각 끝에 한 사람이 강을 보고 서 있다. 이 사진.. 2007. 11. 21.
예천 '묵은 여울'의 외나무다리 복사꽃 필 때면 철거돼야 하는 운명 겨우내 장정들은 오가며 바지런을 떨고... 외나무다리는 외롭다. 사람이 건너가도 한 명이고 달빛이 내려앉아도 한 뼘이다. 그래서 임이 생각나는지 모른다. 복사꽃 능금꽃 그늘에 어리는 눈썹달같은 임이. 그런 눈썹달을 닮은 어여쁜 임이 있을테다. 지금은 싸늘한 별빛 속에 숨어 들었을지라도. 아무래도 좋다. 떠오르는 것이 추억이고 삶의 너끈함이라면. 경북 예천군 보문면 신월1리 내성천(乃城川)에는 삶의 외줄같은 외나무다리가 있다. 이 다리는 초겨울에 태어나 봄이 되면 죽는다. 죽고 살고는 자연이 결정한다. 내성천에 눈석임물이 섞이고 강물이 불어나면 외나무다리는 발붙일 곳을 잃는다. 강물이 줄어 유순해지는 초겨울이 되면 주민들은 다시 어기영차 힘을 합쳐 외나무다리를 놓는다. .. 2007. 11. 20.
누가 떠나고 남았나... 이 글은 느림과 빠름, 만남과 떠남에 대한 명상이다. 20세기를 숨가쁘게 건너오면서 우리가 잃은 것과 얻은 것, 붙잡은 것과 놓쳐버린 것을 짚어보려 한다. 생각하면 많은 것들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흘러갔다. 단순한 소통을 문화라 하고 질주를 문명이라 우기진 않았던가. 나는 빠름 속에서 느림의 급소를 포착하고자 한다. 이것을 이야기할 상징적이고 구체적인 장소가 나루와 다리이다. 다리에 새겨진 시간과 추억을 안주로 어느 나루터 주막에서 술 한잔 걸치고 싶다. 부디 나의 나룻배에 당신은 행인이 되시길…. 잠자는 감성을 깨워 떠나는 여행의 아침은 설렌다. ● 마지막사공 최보식(65) 씨는 낙동강 중류 대암나루(대구시 달성군 구지면)의 현역 뱃사공이다. 요즘도 그는 나룻배(발동기가 달린 철선)를 부리며 강변 주.. 2007.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