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로드의 교량이야기

Harvard Bridge와 길이단위 Smoot



구글어쓰에서 길이를 재다보니 Smoot라는 단위가 있습니다.
이건 어디서 쓰는 단위지? 하다가 생각하다가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Harvard Bridge 전경


미국 보스턴과 케임브리지 지역을 잇는 Harvard Bridge 입니다.
형식은 Plate Girder교로 Charles 강을 횡단하며, 총연장은 659.82m, 교폭은 21.13m 입니다.
Harvard Bridge 1891년 완공되었으며 1988~1989에 개보수 공사를 하였습니다.

Harvard Bridge는 Smoot란 길이단위로도 유명해서 Smoot Bridge라고도 불린다고 합니다.


Smoot와 친구들이 Harvard Birdge 길이를 재는 모습

1958년 10월 어느 날 밤, 보스턴 시내와 케임브리지 지역을 잇는 Harvard Bridge에 청년 Oliver R. Smoot와 그의 친구들이 나타났습니다. Smoot가 수없이 누웠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동안 친구들은 페인트로 바닥에 금을 그어나가며 표시를 했습니다.

이들은 MIT 학생들로 다리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일행중 키가 가장 작은 Smoot(1m70cm)의 몸으로 재보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10 Smoot마다 페인트로 표시하며 측량한 결과 다리의 길이는 '364.4 Smoot + one ear' 였다고 합니다.

Oliver R. Smoot 일행이 표시한 다리의 Smoot 표시는 이들이 졸업한 후에도 후배들에 의해 계속 덧칠되면서 MIT 문화의 상징이 됐다고합니다. 80년대 말 다리가 보수 공사에 들어갔으나 보스턴시는 표시를 남겨둔 것은 물론, 다리의 보도 폭을 1 Smoot로 바꾸기까지 했습니다. 이 사실은 Oliver R. Smoot 가 미국 기준협회에서 회장까지 지내고 은퇴한 후인 2005년 워싱턴 포스트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Oliver R. Smoot

 또한 웹사이트 구글에서는 Smoot 를 길이의 단위로 채택하였으며('1smoot=?m'라고 검색창에 넣으면 1 smoot = 1.7018 m 라고 나옵니다. ^^), 구글 어쓰에서도 Smoot로 길이를 잴수 있습니다. MIT는 지난해 10월 Smoot를 초청해 ‘Smoot 5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

그리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Oliver R. Smoot는 버클리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우주 초단파(마이크로웨이브) 배경복사의 이방성(異方性)과 흑체(黑體) 형태의 발견"의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노벨물리학상 까지 수상했습니다.

어찌보면 젊은이들의 객기로 비쳐질수 있는 사건이 낭만으로, 전설로, 그리고 역사로 남을수 있는 사회적 분위가 부러울 따름입니다.
예전에 올렸던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UBC) 공대생들의 장난" 이라는 포스트에서도 볼수 있듯이 말이죠..
아마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미국의 과학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한편으로는 과연 내가 학생일때, 공대생으로서 저런 객기, 낭만, 패기를 가지고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술먹고 객기는 많이 부렸죠...--;;)

대학입학하여 멋모르고 대학생활 하다보면 군대걱정 해야하고, 군대 다녀오면 취직걱정 해야하고, 취직하면 짤릴걸 걱정해야하는 우리 자신이 바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교량종점부의 표시

10 smoot 마다 표시를 하였습니다.

구글 어쓰 길이단위에 Smoot가 있습니다...^^

구글 어쓰에서 바라본 Harvard Bridge



Harvard Bridge 하부모습

Harvard Bridge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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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량과 자살....



21일 충북 단양군 고수교에서 엄모씨(48)가 자살소동을 벌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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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이런 소동이 가장 많은 교량은 아마도 한강대교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렸을때 부터 심심치 않게 뉴스에서 봤던 교량입니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입구에는 '일촌대기(一寸待己)-잠시만 기다리자' 라는 푯말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치리브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하부에 구리스를 바르거나 베어링판등을 달기도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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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리브에 설치한 미끄럼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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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리브에 바른 그리스



그 외에도 마포대교에는 CCTV를 달고, 어떤시민은 자살방지용 책자를 만들어 걸어놓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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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도 기준으로 최근 3년간 한강에서 건저올린 변사자 및 구조자는 1,252명이라고 하니 거의 하루에 한명꼴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의 금문교의 경우도 자살자가 많아 자살방지용 난간을 만든다고 하여 논란이 된적도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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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이 있는 다리... 중국의 풍우다리



인터넷검색을 하다 재밌는 교량을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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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규모의 목조 교량인 청양 풍우교

중국에는 풍우교라는 독특한 다리가 있습니다. 풍우교(風雨橋)는 화교(花橋)라고도 불리는데, 일반 다리와 달리 다리위에 지붕이 씌워져 있고 교각부에는 고루(큰북을 달아놓은 누각)가 있는 독특한 다리입니다.
다리양쪽에는 의자가 있어 마을사람에게는 화합의 장이 되고 길가던 나그네의 쉼터 역활도 하는 다리입니다.
 얼마전 전주천에 한옥다리를 세운다는 기사를 소개해 드렸는데...
차라리 한옥다리를 이런식으로 세웠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좀더 간결하게 해서요...^^
보차도 겸용이니까 지붕씌우는건 좀 그렇네요... 매연이 지붕에 꽉 차겠네요...
아무튼 나중에 보도교 설계하면 함 써먹어봐야겠습니다. (근데 비싸서 안되겠지요...-.-;;)

풍우다리 중 청양(程陽)풍우다리는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큰 목조교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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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程陽)풍우다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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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程陽)풍우다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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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우교 내부 - 양쪽에 의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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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程陽)풍우다리3



또한 지평(地坪)의 풍우교도 유명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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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地坪)의 풍우교 - 1894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1959년 화재로 소실됐다가 1964년 중건되었습니다. 교량연장은 70m, 폭 4.5m, 높이 8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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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영도다리 이야기



2004년 부산에선 영도다리를 놓고 논란이 일었었다. 과거 중앙동에 있던 부산시청이 옮겨가고 그 터에 100층이 넘는 롯데월드를 지으려는데 그 터 바로 옆에 있는 영도다리가 '영~ 걸그적'거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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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치하인 1934년에 준공된 영도다리는 배가 지나갈 때면 상판이 들리는 우리나라 유일의 도개식 교량이었다.
1934년 11월 23일 개통식이 있었는데, 다리의 일부가 하늘로 치솟는 장면을 보기 위해 무려 6만 명이 몰렸다.

 특히 영도다리는 6.25전쟁 당시 생활고에 지친 피난민들이 달을 보며 망향의 눈물을 흘리던 곳이었고 이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한 실향민들이 투신자살하는 단골 장소로 선택(?)되는 바람에 경찰이 다리 밑에서 보트를 타고 대기하기까지 했다 한다.
 
  피난 와 부산 지리를 모르는 이들은 "영도다리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영도다리는 부산의 예스러움을 간직한 몇 안 되는 곳일 뿐 아니라 부산의 상징이자 정신이다. 서울서는 '한강 가서 빠져 죽어라' 하지만 부산서는 '영도다리에 가서 빠져 죽어라' 한다. 92년 대선 당시 그 유명한 초원복국집 도청사건 때도 여기 모였던 부산 지역 기관장들이 다짐했던 것이 바로 "이번에 YS 당선 못 시키면 모두 영도다리에서 빠져 죽자" 아니었나.
 
  그런데 당시 영도다리 철거에 가장 앞장섰던 이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그건 다름아닌 부산시 공무원들이었단다. 당시 부산시는 보수하면 된다는 학계의 의견조차 무시하고 밀어붙였지만 결국 시민단체와 반대여론에 밀려 확장복원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당시 시에서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며 그 장점만을 홍보하니 많은 시민들이 그 말을 믿었던 듯하다. 그러나 당시 철거에 찬성했던 부산시민조차 지금은 복원결정을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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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의 영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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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영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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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다리와 부산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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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기자의 나루와 다리.....



'나루'와 '다리'...
어찌보면 비슷하기도 하고 서로 상반된 것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주 오래전, 교량공학이라는 단어조차 없었을때 부터 나루는 묵묵히 사람과 물건과 문명을 건너편으로 실어날랐습니다. 지금 다리가 하듯이 말이죠...

하지만 다리가 건설되면서 부터, 시간이 돈이다 라는 말이 나오면서 부터 나루의 역활은 다리에게 옮겨갔으며 '나루'라는 말은 점점 추억속으로 잊혀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소개하려던 글이 하나 있습니다.
"국제신문 박창희 기자의 나루와 다리"라는 기획기사입니다.

거대한 쇳덩어리 다리를 차를타고 휘익 지나가면서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천천히 걸어가면 느낄수 있는것 처럼(정말이에요... 한번 걸어보세요...^^)
너무나 바쁘게만 돌아가는 우리의 삶을 잠시나마 돌아보게 만드는 글들입니다.

제 홈 메인에 써놓은 공학적으로 어쩌구하는 '교량'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있는 '다리'에 대한 글들입니다.
썬로드의 홈페이지가 궁국적으로 지향하고 싶은 내용이기도 합니다.

구조계산 하고있는 분들, 도면그리고 있는 분들, 그리고 리포트 쓰러 오신 분들...
하고 있는일 잠시 접고 천천히 읽어보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아래는 "서론"정도 되겠네요...
앞으로 천천히 하나씩 소개해 드릴께요....

이 글은 느림과 빠름, 만남과 떠남에 대한 명상이다. 20세기를 숨가쁘게 건너오면서 우리가 잃은 것과 얻은 것, 붙잡은 것과 놓쳐버린 것을 짚어보려 한다. 생각하면 많은 것들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흘러갔다. 단순한 소통을 문화라 하고 질주를 문명이라 우기진 않았던가. 나는 빠름 속에서 느림의 급소를 포착하고자 한다. 이것을 이야기할 상징적이고 구체적인 장소가 나루와 다리이다. 다리에 새겨진 시간과 추억을 안주로 어느 나루터 주막에서 술 한잔 걸치고 싶다. 부디 나의 나룻배에 당신은 행인이 되시길…. 잠자는 감성을 깨워 떠나는 여행의 아침은 설렌다.

 

2007. 11. 20.(화)
박창희 기자님께 국제신문에 연재된 '나루와 다리'를 제 블로그에 올리는것을 허락받았습니다. 앞으로 계속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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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량기술자들에게...



우리팀 부장님 블로그에 좋은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저도 늘 느껴왔던 부분이지만 아직도 실천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글을 읽고 다시 실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턴키나가서 교량경관 업체들이 스케치해가지고 와서 백스테이가 어쩌구 구조가 어쩌구 하는걸 보면 참 씁쓸한 맘이 든다. 자꾸 우리 밥그릇 뺏기는것 같아서 말이다. 이미 Conceptual design이라는 밥그릇도 뺏겼는데 말이다.(이미 뺏겻다고 생각된다.)
지금이라도 빼앗긴 밥그릇을 찾기위해 노력해야 할텐데...
근데 과연 순순히 돌려줄까?
이미 얼마이상 교량에는 경관설계를 의무화하는 법제가 추진된다고 하는 예기도 들리던데...
부장님 말씀대로 "an engineer and artist" 가 되어야한다.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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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교량이야기 - 교량전차



앞서 예전에 소개했던 MGB(간편조립교)에 이어 군에서 사용하는 교량을 소개드릴까 합니다...(앞으로도 몇개 소개해드릴께요...^^)

군에서 사용하는 교량은 장간조립교, 간편조립교등의 교량과 도하작전을 수행할때 사용하는 부교인 중문교, 경문교, 리본부교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교량들의 가장 큰 특징은 모두다 부재를 조립해서 사용하는 조립교라는 것입니다. 유사시 별다른 장비없이 병사들의 손으로 간단하게 가설할수 있어야 하니니까요...
하지만 탱크가 지나갈수 있는 교량을 사람의 힘으로만 가설한다는것은 힘든일이긴합니다... 또한 가설시간도 문제가 되겠지요...
간편조립교의 경우 25m지간장의 교량을 1개소대가 40분정도에 가설할수 있긴 하지만 일분일초가 아쉬운 전시에는 40분이란 시간도 길게 느껴지나 봅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교량이 있습니다.

바로 K-1교량전차인데요...



↑ 바로 요놈입니다.


K-1 교량전차는 전투지역 전방에서 전차와 같은 기동성능을 유지하 면서 기갑 및 기계화부대에 대전차 장애물을 비롯한 소형 장애물 의 극복수단을 제공해 준다고 하네요...
한국형 교량전차는 '88 ~ '92년 동 안 해외기술협력을 통해 독자 개발하여 '90년대 중반에 전방 배치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군에있었던 시절에는 교범에서만 봤고.. 미군애들이 조립교 않놓고.. 이런거 쓴다더라 하는 예기만 들었습니다...-.-;;;



↑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일이 생기면... 바람같이 달려옵니다.. ^^;;



↑ 먼저 가설위치에 자세를 잡고 교량을 들어올립니다.



↑ 그리고 접혀있던 교량을 펴서 반대편에 거치합니다.



↑ 거치완료~ 교량 가설시간은 3~5분정도 입니다.



↑ 그다음 건너가기만 하면 됩니다. 계곡부에 가설했으면 멋있었을텐데.. 아쉽군요..


교량의 가설과 회수는 양 끝단의 어느 방향에서나 가능하며, 가설시간은 3~5분, 회수시간은 10분 정도 소요되며. 제방이 단단할 경우 길이 20m 정도의 장애물 및 약 2.4m 높이까지의 제 방에서도 운용이 가능한 장비입니다.


※ 사진출처 : 우바새님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yunsuson )


외국에도 여러가지 형태의 교량전차가 있습니다..







군대교량이야기 - 간편조립교...1
군대교량이야기 - 간편조립교...2
군대교량이야기 - 리본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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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로드의 다리여행기...5 (여행을 마치며...)



1박2일 동안 썬로드가 본 다리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정말 각 형식마다 하나씩 있네요...^^


>>남해대교(타정식현수교) -지간구성 : 130+390+130=650m


>>창선교(강상판형교)-지간구성 : 84+3@90+84=438m


>>단항교(PSC BEAM교)-지간구성 : 3@50=150m


>>창선대교(3경간 단순 하로아치교)-지간구성 : 80+180+80=340m


>>늑도대교(PSC BOX GIRDER교:FCM)-지간구성 : 90+160+90=340m


>>창선대교(중로아치교:강리브+콘크리트보강형)-지간구성 : 29.235+143.530+29.235 = 202.0m


>>삼천포대교(사장교)-지간구성 : 103+230+103=436m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혼자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처음에 버스타고 남해를 내려갈때만해도 괜히 시간낭비만 하는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는데...
막상 가서 보니 혼자 하는 여행도 괜찮은것 같았습니다.
총각때 술이나 퍼먹지 말고 열심히 다녀볼껄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이미 지나간 총각시절을 다시 돌릴수는 없겠지요...^^;;


다리가 생기기전 한가롭던 어촌마을은
다리가 생기고 사람이 들어오고 문명의 이기가 들어오면서
점점 때가 묻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리가 생김으로서 얻는 것들이 더 많긴 하겠지만
커다란 다리의 규모와는 반대로 작고 소박한 무엇인가는 점점 스러저 가는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카메라 가방메고 혼자 떠나는게 한편으로 멋있고 낭만스럽게 보일지는 몰라도(떠나기전 자기체면을 하고 떠났습니다...^^)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경치가 좋은데를 가도, 맛있는걸 먹어도 마누라랑 딸래미가 생각이 나니까요...
아마 '다리'에 목적이 없는 여행이었다면 도중에 돌아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놈의 '직업정신'이 다리앞에서는 잠시나마 식구들 얼굴을 잊어버리게 만들었으니깐요....^^;;
다음에 올때는 가족과 함께 와야겠습니다.
그때는 아마 다리구경은 못하겠지요...?


>>삼천포대교 공원에서 셀프샷~(300D에 탐론끼고 한손으로 들려니 힘드네요..)


상세사진과 설명은 이후에 교량별로 이어집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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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로드의 다리여행기...4 (창선-삼천포대교)



금산에서 내려와 다시 남해읍으로 향했습니다.
내려올때도 히치하이킹을 시도했으나 잘 안서더군요...
그냥 걸어 내려왔습니다..-.-;;
남해읍에서 다시 창선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아무도 타는 사람이 없더군요... 저 혼자 탔습니다. -.-;;
남해섬에서 창선도를 넘어가는 지족해협에 빨간 다리가 하나 보입니다.
바로 창선교 입니다.
1980년에 완공된 다리가 붕괴되어 그자리에 다시 세운 다리랍니다.
현재는 강산판형교로 되어있습니다. 창선가는 버스가 막차여서 그냥 지나갈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재빨리 창문으로 카메라를 들이댔습니다.


>>창선교 모습... 그나마 젤 나은 사진입니다.-.-;;



창선교를 지나 한 20분정도 가니까 저멀리 빨간 아치교가 보입니다.
드디어 창선-삼천포 대교에 왔습니다.
다리 입구에서 내려달라고 해서 내렸습니다.


창선-삼천포대교는 경남 사천시 대방동과 남해군 창선면을 잇는 국도3호선 구간의 삼천포와 창선도 사이 3개 섬을 연결하는 총 연장 3.4㎞의 연륙교로, 5개의 다리(단항교, 창선대교, 늑도대교, 초양대교, 삼천포대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얼마전에 가장 아름다운 길로 선정되기도 했었죠....^^


>>창선-삼천포대교 전경..


5개의 다리가 각각 PSC BEAM교, 하로아치, PSC BOX GIRDER교, 중로아치, 사장교로 시공되어 교량의 전시장이라고도 합니다.


>> 여기서 부터 창선-삼천포 대교입니다.



가장먼저 단항교가 눈에 들어옵니다. PSC BEAM교라 그런지 이 다리에만 "대교"란 말이 없네요....^^
30m 5경간으로 되어있습니다.


>>단항교 모습...다리 아래는 횟집에 모텔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단항교를 지나면 바로 빨간 아치가 인상적인 창선대교가 보입니다.
창선-삼천포 대교는 모두 3차로로 가변차선으로 운용되고 있었습니다. 모두 단경간이구요 랭거아치교로 보이네요...
창선도와 늑도를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창선대교.. 3차선 가변차로로 운용된다.


>> 창선대교 전경...



주경간 아치교를 지나는데 행거에 수평부재가 보기싫게 달려있습니다. 알아보니 완공후 행거가 풍우진동을 일으켜 중간에 수평부재를 추가로 설치했다고 하네요... 방화대교도 같은이유로 행거에 부채를 설치했습니다.


>> 주경간 아치교 전경...



창선대교를 지나니 저멀리 늑도대교, 창선대교, 삼천포 대교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앞에서 부터 늑도대교(FCM), 창선대교(중로아치), 삼천포대교(사장교)



사천시 늑도와 초양도를 연결하는 늑도대교는 90+160+90=340m의 지간구성을 갖는 PSC BOX GIRDER교입니다. FCM으로는 중앙경간이 꽤 큰 편에 속합니다.(현재 최대가 165m로 알고있습니다.)
형고는 주두부 9.0m에서 일반부 2.5m로 하부의 곡선이 아름다운 다리입니다.


>>늑도에서 바라본 전경... 하부의 곡선이 아름답지 않나요?





>> 교각에 설치된 교량점검차...회색의 콘크리트와 붉은색의 강재가 좀 안어울리는 같기도...



늑도에 내려가 보니 횟집이 꽤나 많았습니다.
다리가 생기기전 평화로은 어촌 마을이었을것 같은데...
아마도 이 다리들이 생기고 나서 생긴 것들이겠지요...
다리들로 인해 평화로운 섬에 때가 묻는것 같아 약간은 씁쓸한 기분도 듭니다.


늑도대교를 건너가니 이제 초양대교와 삼천포대교가 눈에 보입니다.


>>초양대교와 삼천포대교


초양대교는 중로아치교로 지간구성은 29.235+143.530+29.235 = 202.0m이고 아치지간은 192.0m입니다.
보강형이 콘크리트 MULTY T-BEAM으로 되어 있는게 특이합니다.
아치부분은 3000ton 크레인으로 일괄가설하였고 보강형은 트러스지보공을 설치하여 타설하였습니다.
시공중 사진은 추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초양대교는 창선-삼천포 대교의 다리들 중에 주변 환경과 가장 잘 어울리는 (개인적으로) 것 같습니다. 이만한 규모의 중로아치교는 국내에 유일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중로아치를 꼭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초양대교를 하부에서 찍고싶었지만 아쉽게도 내려갈수 있는 길이 없더군요... 혹시 다시 오게되면 유람선을 꼭 타봐야겠습니다.

교량을 건너가다 보니 아치리브와 보강형 접합부에 조인트가 있습니다.
아치리브에 크로스박스가 있고 크로스박스위에 측경간과 보강형이 지지되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별로 좋은 구조가 아닌것 같은데... 콘크리트 바닥판을 적용해서 이런 구조가 된것 같습니다.


>>주경간과 측경간에 설치된 조인트


>>보강형 케이블 정착부...


>>사천측에서 바라본 초양대교



창선대교를 지나 이제 마직막 다리인 삼천포 대교가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창선-삼천포 대교중 가장 규모가 큰 다리로 103+230+103=436m의 지간구성을 갖는 사장교입니다.
주탑의 높이는 89m로 H형상으로 되어있습니다.


>>삼천포대교 주탑의 모습


>> 새들부 모습.. 10개의 케이블이 관통한다.


>> 케이블 정착부


>> 사천측에서 바라본 삼천포대교와 초양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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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로드의 다리여행기...3 (상주해수욕장,금산보리암)



아쉽지만 남해대교를 뒤로하고 남해읍으로 갔습니다.
남해대교 근처 가게에서 추천해준 가천 다랭이 마을, 금산을 둘러보려했으나 거기 가는 버스가 3,4시간에 한대씩 있네요..
기다렸다 갈까 고민은 했지만 마냥 읍내에 있을 수는 없어서...
상주해수욕장에 가기로 했습니다.
남해군 안내책자에 나와있는 가랭이 마을 사진을 보고 꼭 가고싶었었는데 아쉽군요...


>>대신 사진이라도 올립니다. 계단식 논을 가랭이 논이라고 하는것 같아요..



다행이 상주해수욕장 가는 버스는 제법 있더군요..
읍내에서 버스를 타고 3,40분을 가니 해수욕장이 나왔습니다.
아직 성수기 전이라 그런가 사람이 거의 없더군요...
그냥 평범한 해수욕장입니다.
차라리 버스안에서 보았던 해안의 모습이 더욱 머리속에 남는군요...


>>상주해수욕장의 모습...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해수욕장 뒷편으로는 한폭의 병풍처럼 소금강산이라고 일컫는 남해금산이 보입니다.


>>남해 금산... 정상부에 구름이 걸려있습니다. 내일 올라가야하는데.. 에휴~



해가 지고 해수욕장에서 하루 자야만 했습니다. 민박집이 아주 많더군요... 그중에 젤 허름해 보이는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혼자자는데 좋은데서 잘 필요가 있을까 했지요...
헉... 에어콘도 없는... 진짜 학생때 가보던 그런 민박집인데 4만원을 부릅니다...
아직 성수기도 아니고 혼자잘껀데.. 넘 비싸다 하면서 2만원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맥주 두캔 사서 바닷가로 갔습니다.
참 청승맞더군요... 서울에 두고온 딸래미랑 마누라가 생각납니다.
혼자 있는 여자라도 없나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다들 일행이 있더군요...^^;;


>> 여름 바닷가 가면 꼭 보는 불꽃놀이 (저희땐 없었습니다만.. 이게 여자들 부르는 거라면서요?)



모래사장에 앉아 처량하게 맥주를 먹으며 바다를 바라보니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토목의 미래를 고민했다고 하면....ㅎㅎㅎ


민박집으로 돌아와 밤새도록 쾌쾌한 냄새와 눅눅한 이불... 그리고 얼굴을 기어다는 벌래와 씨름을 했습니다.
7시에 일어나 대충 씻고 금산을 향했습니다...


정류장에 가보니 버스가 한시간이나 뒤에 있더군요...
마침 장에 가시는 할머님이 계셔서 이런저런 예기를 했지요..
민박집을 운영하시는 할머니께 "창선-삼천포 대교 생겨서 이제 편해지셨겠네요..." 하고 여쭤보니
"다리 놓으니깐.. 사람들이 여기와서 먹고 자고가지 않고 그냥 휙 지나만 가서 죽겠다"고 말씀하시네요...
흠... 다리를 설계하는 사람으로서 다리를 놓으므로 인해 지역주민들에게 편리함을 줄수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역시 모든걸 다 만족시킬수는 없는것 같습니다.
물론 다리가 들어서서 더 이익이 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요..(다리주변 횟집 사장님 들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할머님께서 "총각-총각으로 아셨습니다...^^- 밥먹었어?" 하고 물어보십니다. 안먹었다고 하자 "먼데 왔는데 밥은 먹구 다녀야지" 하시면 바로앞에 집으로 데려가 밥을 주셨습니다.
"혼자 살아서 반찬이 없어"하시며 내오신 밥상에는
정말 반찬이 없었습니다...^^;
밥, 오징어젓, 김치가 전부였으니까요...
갑자기 시골서 혼자 계시는 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아무래도 혼자 먹으면 귀찮아서 잘 안해먹게 되니까요...
조만간 할머님께 가봐야겠습니다.
더 주시겠다는 할머님을 만류하고(?) 정류장으로 나가서 버스를 탔습니다.


금산입구까지 와서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금산은 물론 등산 코스도 있지만 거의 정상 부근까지 도로가 나있어 차로도 올라갈수 있습니다.
남해터미널에 전화해보니 3시간 뒤에나 있다는군요..-.-;;;
할수없이 그냥 걸어서 올라갔습니다.
조금 올라가다가 보니 승합차가 한대옵니다.
"에라 밑저야 본전이지" 하며 손을 흔들어보았습니다.
차가 섭니다... ㅎㅎ 운도 좋습니다.
한 어머님이 아들 둘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시고 계시더군요...
"멋지십니다 어머님"... 그리고 "고맙습니다." ^^
승합차를 타고 거의 정상에 와서 한 800미터만 걸어가면 금산 정상이 나옵니다.
정상부에 구름이 잔뜩 끼어 아무것도 안보이네요...-.-;;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아무것도 안보였습니다.



정상에 올라보니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얼마나 힘들게 올라왔는데...흑흑


>> 이런 경치를 바라고 왔더니...



>>이런경치가 보이네요..



아쉬움을 뒤로하고 금산 정상 부근에 보리암에 갔습니다.
683년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초당을 짓고 보광사라 하였고 산이름을 보광산이라 하였는데 훗날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 기도를 하고 조선 왕조를 열었고, 그 감사의 뜻으로 1660년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 이름을 금산, 절 이름을 보리암 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역시 안개로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 종각의 처마...



비록 정상에 올라 아무것도 안보였지만
간만에 산행을 하며 맑은 공기를 마시니 기분은 좋더군요...
불행이도 내려올때는 서는 차가 없어 그냥 걸어내려왔습니다.
산 중턱쯤 내려오닌 구름이 걷히고 해가 뜨더군요...
나중에 날씨 좋은 날 꼭 다시 와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금산을 내려온후 버스를 타고 다시 남해읍으로 갔습니다.
이제 창선-삼천포대교에 갈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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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로드의 다리여행기...2 (남해대교)



어제글에 이어서 계속 갑니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남해가는 버스를 타고 4시간여를 가니 저 멀리 빨간 주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홋~ 남해대교다!
확실히 화면으로 보는것과 실제로 보는건 느낌이 많이 틀리더군요...
버스가 남해대교 건너기전에 정차를 했습니다.
한 할머님께서 내리시더군요.. 저두 후다닥 가방챙겨 같이 내렸습니다. 걸어서 건너가봐야죠...^^;
남해대교를 본 첫느낌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다 였습니다. 사진으로 볼때는 웅장한(?)느낌도 들었었는데...


>>남해대교야~ 너보려구 썬로드가 왔다..



본격적으로 다리를 건너가봅시다...
주케이블과 행어가 먼저 들어옵니다.
주케이블은 직경이 258m로 역시 생각보다 아담하더군요... 영종대교 케이블(609mm)에 비하면 꽤 작은 편이죠


>>메인케이블과 행어


그리고 주경간 중앙부 케이블과 보강형을 연결하는 사재가 있는데... 어디에 사용될까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케이블 장력조정이나 보강형 캠버조정용이 아닐까요...


>>이 사재는 과연 어디에 쓰는 물건일까요..(아시는분 답글주세요..)



※ 이 부재를 Shear Connector라고 하네요... 보강형의 뒤틀림을 감소시킬 목적으로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제 블로그 포스트중에 이런 말이...^^
http://sunroad.pe.kr/index.php?pl=143&ct1=5&ct2=18




주경간 중앙부에 오니 진동이 꽤 크더더군요.. 트럭한대만 지나가도 출렁출렁... 난간에서는 삐걱삐걱 소리도 납니다...


>>중앙경간에서 바라본 전경



주탑부 도로면에는 신축이음이 있다.


>>주탑부 신축이음 전경



>>주탑 새들부



남해측 앵커리지 모습입니다. 광안대교 앵커리지에 비하면 정말 아담하죠...^^ 교명판이 붙어있습니다.


>>앵커리지 모습


>>교명판.. 교량에 명성에는 좀 안맞게 지저분하네요..



드디어 다 건넜습니다. 역시 다리는 직접 걸어서 건너가야 여기저기를 볼수 있는것 같습니다...^^
걷는 사람 입장에서는 보도폭이 많이 좁은게 흠이네요...


>> 남해측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이제 남해대교 밑으로 내려와 노량마을에 왔습니다.
거의 식당, 횟집밖에 없네요... 음료수 하나 사면서 어디 갈만한데 있나고 물어보니 금산과 가랭이 마을을 추천해주십니다.


>>남해측 주탑 전경


>>노량마을에서 바라본 남해대교....



이제 바로 옆에 충렬사로 향합니다.
이순신장군의 사당이죠... 이순신 장군은 남해대교 부근에서(노량해전) 전사하셨다죠.. 이순신 장군의 가묘가 있습니다...
휴가철이 아니라 그런지 사람은.. 아무도 없더군요..^^


>> 충렬사 내에서... 아무도 없으니 좀 썰렁하더군요...



바로 앞 바다에는 거북선이 있습니다..
이런 입장료가 있군요... 그냥 지나갑니다..^^

이제 다시 버스를 타고 남해읍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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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로드의 다리여행기...1 (남해를 가다)



이번 여름휴가는 날씨가 참 안 도와주더군요...
태풍에 장마에....
10일 휴가중 서울에 비가 안온날은 딱 하루밖에 없었습니다...-.-;;
휴가기간 내내 멍하니 집에만 있던 썬로드가 안쓰러웠는지..
마누라가 혼자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예기했습니다.
혼자만의 여행이라... 학교다닐때도 해본적이 없었습니다.
청승맞게 뭐하는 짓이냐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떠나보기로 결심했죠...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예전에 다리여행을 추천해달라는 사람에게 남해를 가보라고 예기한게 떠올라 남해로 결정을 했습니다.
(회사사람이 그러더군요.. 이거 직업병이라고..-.-;;)

간단한 옷가지에 카메라만 챙기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떠났습니다.(지금생각해 보면 참 용감하네요... 이 나이에..-.-;;)
원래는 2박3일을 생각했는데, 1박2일만에 여정이 끝나더군요...
1박 2일동안의 여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남해대교
2:송정해수욕장
3:금산, 보리암
4:창선교
5:창선-삼천포대교


1박 2일동안 차도없이 발품 많이 팔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계속 이어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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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교...뽕뽕다리...콧구멍다리...^^



개그맨이자 MC 유재석의 얼굴 그림이 새겨진 '메뚜기교'가 있다는 소문이 돌고있길래 알아봤습니다...



헉... 정말 있네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에 있는 교량이랍니다...
알고보니 교명주에 유재석씨 얼굴은 합성이라고 하네요...
메뚜기교로 불리게된 이유도 유재석씨랑은 전혀 상관없었습니다...^^

다음은 동송읍 사무소 심재택씨가 들려주는 메뚜기교의 '기원' 입니다.




>>메뚜기교 교명판 위에 유재석씨 얼굴은 없는것을 알수 있다.


1960년대초 현재 메뚜기교가 있는 부근에 개울이 있었는데, 다리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징검다리 식으로 큰 돌을 몇 개 놓으면서 건너기 시작했는데, 당시 사람들이 건너는 모습이 껑충껑충 메뚜기 뛰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메뚜기 다리라고 불렀지.

그 이후 60년대 말에 징검다리를 몇개 더 놨는데, 장마때면 항상 망가지고 없어져 버리곤 했다. 지난 1996년 최대의 수해이후 조그만 다리를 놓기도 했는데 그때만 해도 제대로 된 이름도 없어 그냥 메뚜기 다리라고 불렀지.
그리고 매년 장마철 마다 다리가 망가져 나라에서 본격적으로 2003년에 다리를 놓기 시작해 2004년에 완공됐지. 당시 이름은 하월교(下月橋) 였어.

그런데 2005년에 60년대 당시 계셨던 동네 어르신들이 그때 부르던 '메뚜기교'의 전통(?)이랄까 이름을 되찾자고 해서 군 관광경제과에 민원을 넣었지. 다리 이름을 '메뚜기교'로 해달라. 그래서 결국 승인받아 '메뚜기교'의 이름을 되찾아 지속되고 있는 것이지.


출처 : 도깨비뉴스






메뚜기교... 요즘들어 자주 생각하는 거지만 '교량'이란 말대신 '다리'라고 하는게 어떨가하는 생각이 든다. 메뚜기교 대신 메뚜기다리하면.. 훨씬더 잘어울리고 정감있는것 같은데...^^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특색있는 이름(애칭?)을 가진 교량들이 많을것이다. 본인이 알고 있는 교량 두개만 말하면...



>>뽕뽕다리


이 다리는 광주천의 교량으로 전남방직(주)에서 가설했다고 합니다. 당시 전남방직 직공들이 광주천 건너 발산동에 많이 살아 직공들의 통행을 위해서 말이죠...1973년 발산교가 건설되면서 철거됬다고 합니다.... 구멍이 뽕뽕뚫려있어(유공발판.. 아르방이라고 하나요?) 그런 이름이 붙은것 같습니다. 사진에서 처럼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들은 멀리 돌아가야되는게 아닌지..-.-;;
또한 경북 예천 회룡포 마을에도 뽕뽕다리가 있다네요..(아직도 공용중입니다.)



>>콧구멍 다리

춘천시 소양강댐 바로 아래에 있는 교량으로 정식명칭은 세월교입니다. 하수관으로 사용하는 콘크리트 관을 주욱 세워 만든 교량입니다. ^^ 요즘은 통수단면이 어쩌구 하면서 이렇게 하지 못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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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교량...(3)



평양의 교량 마지막입니다. ^^;


(5) 양각교
양각도를 연결하는 교량으로 트러스교입니다. 철도교와 도로교가 있다는데 일체로 된건지 나란히 있는건지 확인은 안되네요...
양각도 골프장 바로 뒷 건물이 평양국제영화관이며 그 뒤에 보이는 경기장이 양각도 축구경기장입니다.
나중에 서울-신의주간 철도가 연결되면 양각교 위를 지나갈수 있을겁니다...^^



해질무렵의 양각교... 양각교 뒤에 보이는 교량은 충성교입니다.



(6) 충성교
1980년 완공된 충성의 다리는 대동강을 가로 질러 평양시 평천구역과 락랑구역(낙랑구역)을 잇는 다리이다. 다리 가운데에는 쑥섬을 이어 주는 입체 교차로가 있다. 형식은 PSC Box교로 보이네요...



※ 평양의 교량 6개를 살펴보았는데... 자료가 거의 없어 찾는데 힘들었습니다. 간혹 있어도 북한관련 사이트는 국내에서 접속을 안되게 해놨네요... (하지만 접속 못할것도 없지요...^^)
평양의 교량은 6개가 전부이지만 교량 하나하나 마다 서민들의 애환이 많이 담긴것 같습니다.
한강의 교량도 예전엔 모르겠지만 도시가 발전하면서, 교량이 많아지면서 점점 "상습 정체구간" 으로만 느껴지지 않나 싶습니다.
한번 시간내서 교량들을 직접 걸어봐야겠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평양에 직접가서 교량들을 보고 싶습니다... 그날은 꼭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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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교량...(2)



어제에 이어 평양의 교량 두번째입니다.


(3) 옥류교
"옥류" 라는 말도 앞의 "청류"와 같이 대동강의 별칭입니다. 구슬처럼 푸른 강물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1960년도에 건설된 옥류교는 평양 중구역과 대동강구역을 잇는 교량으로 옥류교 양측에는 주체사상탑과 옥류관등이 있다. 왕복 4차선으로 교폭은 28.5m 총연장은 700m입니다.
교량형식은 PSC BOX교로 추정됩니다.

 

대동강 유람선에서 바라본 옥류교

 

※ 옥류교는 평양 시만들의 애환이 많이 담겨있는 교량인것 같습니다. 여기 저기 찾아보면 옥류교에 대한 추억들이 참 많이 있더군요..


- 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의 이름은 바로 옥류교 옆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네요...


- 평양에서 가장 유명한 자장면 전문점은 `옥류교 짜장면집'이다.
지난 수십년간 자장면만 취급해 온 '옥류교 짜장면집'은 뛰어난 맛으로 명성이 높아 하루에 1천여 그릇이 팔려 나갈 정도다 (북에도 자장면이 있었군요..)


- 주체49(1960)년 옥류교가 완공되였을 때였다. 건설자들은 김일성주석께서 다리의 현판을 친필로 써 주실것을 청원하였다.
주석께서는 여러번 사양하시였으나 건설자들의 거듭되는 청을 더는 마다하지 못하시고 붓을 드시였다. 붓에 먹을 묻히시고 단숨에 "옥류교" 라고 쓰신 그이께서는 한동안 살펴 보시고 나서 일군들에게 꼭 전문가들의 가필을 받도록 하라고 이르시였다.
그이의 말씀에 따라 관계자들은 붓글씨에 조예가 깊은 한 로인을 청하여 어느 분의 글씨인가는 이야기하지 않고 그저 가필을 부탁하였다. 친필이 있는 종이를 펼쳐 본 로인은 자리에서 일어 서더니 "나는 이런 옥필을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대인이 쓰신 글입니다. 이런 글에 붓을 덧대는것은 당치 않은 소행입니다." 라고 정중히 말하였다. 관계자들은 다른 서예가에게 부탁해 보았으나 신통히도 같은 말을 하는것이였다.
(이런.. 이런 일화까지 등장하는것을 보니 정말 애환이 많은 교량인가 봅니다. 그건 그렇고 교량명을 지은사람이....ㅎㅎ, 설마 이런거 올렸다고 국정원에서 전화오지는 않겠지? -.-;;)


- 그리고 옥류교 근처는 평양 연인들의 밀회 장소라고도 하네요...^^;
"5남매 중 둘째라고 말하는 황 선옥씨는 이북 총각처녀들의 결혼연령에 대해서는 여성들은 보통 24살에서 26살, 남성들은 27살에서 30살 사이에 혼례식을 올린다고 말한다. 자신도 내년이면 시집갈 계획이라며 지금 「줄기차게」열애중이라고 약간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 준다. 이때 필자는 <줄기차게>라는 표현을 듣자 말자 한바탕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나 연애장소가 옥류교 다리라는 것까지는 알려 주었으나 애인과 손목을 잡아보았느냐고 묻자 이 질문에 대해서는 <상상에 맡기겠어요>라고 만 응답하며 엷은 미소를 짓는다."


- "옥류교를 아시나요? 내 고향 평양의 대동강변에 푸른 기와를 떠 이고 배고픈 사람들의 눈 뿌리를 슬그머니 부여잡는...그 야외식당의 난간에 서면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 다리가 놓여 있답니다. 열 두개 교각 밑에 구슬같이 맑은 물이 흐른다고 해서 옛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름이 옥류교라 했거든요. 집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집으로 매일처럼 걷던 다리인데 길이는 팔백 미터 구요, 너비는 이십 이 미터, 자동차 넉 대가 너끈히 지나다닐 수 있는, 평양에서 제일 큰 다리가 옥류교 랍니다. 제가 어려서 학교 다닐 때는 어머니가 그 한 끝에서 손을 흔들어 주셨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는 또 다른 한 끝에 선생님이 늘 서 계셨답니다. 커서 군대갈 때 그 다리 머릿돌 모서리에 이름 석자 적어놓았다가 관리원 영감한테 뒤통수 얻어맞던 일도 있고 친구들과 옹노를 놓아 강비둘기 잡아먹던 기억도 거기 있거든요. 멀리멀리 떠날 때요, 도망치듯 고향을 떠날 땐 그놈의 다리가 얼마나 길어 보이던지, 예까지 닿아 있다면 믿으시겠나요? "


- 헉.. 서울 한강의 한남대교에도 옥류교의 비화가....
그 당시 북한의 대동강에 건설된 옥류교의 교폭(25.5m)보다 크게 건설하기 위해 교폭을 20m에서 27m로 크게 넓히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미 하부 우물통 기초가 4차선 규모에 맞게 일부 시공되고 있는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6차선 교량으로 바뀌게 되어 이미 세워놓은 기초만으로는 6차선 교량을 받쳐줄 수가 없고 그렇다고 해서 수중 15m까지 파내려가 허물거나 빼낼 수도 없고 해서 시공이 끝난 우물통 위에 박스형으로 콘크리트 확대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교각을 세우는 공법으로 변경하기도 하였다. (교폭좀 작으면 어떻다고 그러냐.. -.-;;)





(4) 대동교
1905년 건설된 대동교는 대동강교량중 가장 오래된 교량입니다.
트러스교이구요.. 원래는 철도교였으나 현재 도로교로 사용중인것 같습니다.
현재 대동강을 횡단하는 철도교는 양각교가 있습니다.

 

상류측에서 바라본 대동교전경...뒤에 보이는 교량은 양각교이다.

 

하류에서 바라본 대동교... 뒷편으로 옥류교와 능라도, 그리고 5.1체육관이 보인다.





※ 대동교하면 이 사진을 빼놓을수가 없습니다.

바로 폭파된 대동강 철교를 건너는 피란민’의 모습입니다.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유엔군은 당시 중공군이 인해전술(人海戰術)로 개입하자 12월 4일 평양을 포기하고 후퇴하기로 결정했고, 중공군의 추격을 막기 위해 대동강 철교를 폭파해버렸습니다.


“철교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피란민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길을 나선 사람들인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진 찍는 일뿐이었습니다. 어찌나 추운지 군용장갑을 꼈는데도 손가락이 얼어 셔터를 누르기가 힘들었습니다.”


막스 데스포의 이 사진은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옥류교와 대동교 위성사진...
위에 있는것이 옥류교, 아래가 대동교입니다.
오른쪽 높은 탑은 주체사상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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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교량...(1)



"북한의 토목기술은 어떨까?"
얼마전에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흠... 글쎄... 터널이나 지하철쪽은 뛰어나지 않을까?"
어렸을때부터 받은 반공교육의 발로였을까?
머리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건 다름아닌 땅굴이었습니다...-.-;;

얼마전 해외 사이트에서 교량을 하나 찾다가 "북한의 교량도 소개되어 있을까?" 생각하며 함 찾아봤습니다.
하지만 거의다 교량명만 있고, 지간구성이나, 형식 등은 나와있지 않더군요... 더구나 사진은 한장도 없었습니다.

그뒤로 열심히 인터넷을 뒤저서 모은 사진과 자료들을 앞으로 3회에 걸처 올려볼까 합니다. 자료가 워낙없어 추측한것도 많습니다. 틀린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지적해주세요.. ^^;



서울에 한강이 있다면 평양에는 대동강이 있습니다.
대동강은 국내에서 다섯번째로 큰강으로 평안남도 대흥군과 함경남도 장진군 사이 한태령에서 발원하여, 평양시내를 가로질러 남포시 와우도구역 영남리·송관리 경계에서 황해로 흐르는 강입니다.
서울 한강의 교량들처럼 평양의 대동강에도 여러개의 교량이 있습니다. 상류에서부터 청류교, 능라교, 옥류교, 대동교, 양각교, 충성교(충성의다리) 이렇게 모두 6개가 있습니다.



(1) 청류교

 


먼저 가장 상류에 있으며 가장 최근에 건설된 청류교 입니다.
앗... 사장교입니다. 사실 북한의 교량들을 찾게된 계기가 된 교량입니다.
'청류'는 대동강물이 맑고 푸르다해서 붙여진 대동강의 별칭입니다.
평양시 모란봉구역과 대동강구역을 잇는 교량으로 1994년 11월 1차완공됐고 1995년 10월 10일 당창건 50돌이 되는 해까지 청류다리 2단계공사(서평양까지 연결)와 금릉2터널을 현대적미감이 나게 건설할 것을 명령함으로써 완공된 교량입니다.
청류교는 왕복4차로의 일면 사장교로서 총연장은 450m입니다.
(그림에서 비율로 계산해 보니 지간 구성이 100+250+100 =450m정도 될까요? ^^; )
케이블 배치형상은 Semi-Fan 형식이며 주로 인민군 군인들이 이 다리건설에 동원됐다고 합니다.
또한 능라도와 서쪽 모란봉구역을 연결하는 2단계구간은 650m의 아치교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네요...


5.1경기장과 청류교 전경... 사장교아치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 능라교

청류교와 같이 능라도를 연결하는 교량으로 능라교가 있습니다.
1988년 완공됐으며, 스틸박스나, 플레이트 거더교로 추정됩니다.(두번째 사진...)

 


옥류교에서 바라본 능라교, 청류교 전경... 능라교는 스틸박스나 플레이트 거더교로 보입니다.

 

능라도 일대 위성사진...
위부터 청류교, 능라교, 옥류교... 자세히 보면 청류교의 주탑과 케이블이 보입니다..^^
옥류교 아치부근에는 터널(금릉2터널)도 보입니다.




※ 사족하나...
"1994년 11월 1차완공됐고 1995년 10월 10일 당창건 50돌이 되는 해까지 청류다리 2단계공사(서평양까지 연결)와 금릉2동굴을 현대적미감이 나게 건설할 것을 명령함으로써 완공됐다.
총길이 450m의 길이와 수십m의 너비를 가진 청류다리는 두 대의 지탑교각과 그를 중심으로 해 양쪽으로 부챗살처럼 늘어진 수십줄씩의 쇠밧줄이 드리워져있는 특색있는 쇠밧줄다리이다."


청류교 설명을 찾다가 찾은 설명입니다. 북한에서는 사장교를 쇠밧줄 다리, 터널을 동굴이라고 하는것 같네요...^^
북한에서는 한자어와 외래어를 순수 우리말로 고처서 사용한다가고 하죠? 사실 교량이름도 청류다리, 능라다리로 나와있습니다.
교량이라는 말보다는 다리란 말이 더 정감있어 보이는건... 저만의 생각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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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9 - [한국의 교량/북한의 교량] - 평양의 교량...(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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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바람에도 교량이 무너질수 있다? ...타코마 브리지



타코마 브리지는 얼마전 TV에서도 방영되어 토목기술자뿐아니라 일반사람들에게도 유명한 교량이 되었습니다...^^
1937년,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 해협(Tacoma Narrows)에 첫번째 다리가 건설되었을 때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량이라고 격찬했습니다.
타코마 브리지는 당시도 신공법이었던 현수교(suspension bridge)로 건설되었고 미항으로 이름난 타코마 항에 썩 잘 어울리는 훌륭한 교량이였습니다.
당시는 현수교 건설이 붐을 이루었고 더 가볍고 날렵한 현수교를 만들기 위해 기존에 사용되던 트러스 보강형 대신 플레이트거더 보강형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완공 3년만인 1940년 11월 7일에 붕괴되었습니다.
원인은 바로 바람입니다.
타코마 브리지의 설계풍속은 53m/s로 토네이도에도 끄떡없도록 설계되었으나 붕괴당시 풍속은 19m/s로 설계풍속 이내였습니다.
타코마 브리지가 설계풍속 이내에서 붕괴된 원인은 바로 공진(Resonance)이었습니다.
공진은 물리시간에 배웠듯이 강제진동수과 고유진동수가 일치하여 진폭이 점점 커지는 현상입니다.
우연히도 (사실 정말 재수없게도) 타코마브리지의 고유진동수와 바람의 강제진동수가 같게되어 공진이 일어난거져...^^
공진에 대해서 잠깐 설명하자면... 모든물체는 고유진동수라는 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유진동수란 어떤 물체가 진동할때 1초에 몇번 진동하는가 하는 것이죠... 예를 들면 그네를 탈때 그네가 1초에 2번 왕복한다면 그 그네의 고유진동수는 2입니다.
그네의 고유진동수에 맞추어서 뒤에서 밀어준다면(강제진동) 큰힘을 들이지 않고 그네를 높이 올릴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진현상이죠...
초등학교때 소리굽쇠를 가지고 실험을 할때도 마찮가지이죠...^^
공진현상은 오래전부터 인간들이 인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옛날 로마시대의 병사들이 행군할때 교량구간에서는 발을 맞추지 않아서 건넜다고 하네요... 아마 발을 맞추어 행군하다가 교량이 무너진 적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지난 월드컵때 오~필승코리아를 외치며 경기장에서 관중들이 발을 구르는 것을 보고 만약 저 발구르는것이 경기장의 고유진동수와 일치하여 공진을 일을키면.. 경기장이 무너질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다행이 그런 일은 없었지만요...^^;
교량에서의 고유진동수는 교량의 강성과 지간장에 좌우됩니다.
강성이 크고 지간장이 짧을수록 고유진동수가 커지게 됩니다. 기타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길수록, 또 줄이 짧을수록 높은음이 나는것 처럼 말입니다.
보통 교량의 고유진동수 많큼 큰 진동수를 가지는 바람은 불지 않습니다. 하지만 타코마 브리지의 경우는 보강형의 강성은 작게, 지간은 길게 설계하여 고유진동수가 작아졌고 교량의 고유진동수와 비슷한 바람이 불어와 붕괴된것입니다.

풍동역학에서는 풍하중에 의한 구조물의 거동을 다음과 같이 분류합니다.
정적거동으로 Torsional divergence (풍속이 증가할수록 교량단면의 뒤틀림이 서서히 증가하다가 파괴에 이르게 되는 현상)
동적거동으로는 Vortex shedding (바람이 구조물에 부딪칠 때 구조물의 후면에서 와류에 의해 파르르 떨리는 현상, 금속 피로에 영향을줌), Flutter(공기역학적 불안정 현상으로 바람이 일정한 속도에 도달하면 구조물이 진동하며 발산 파괴를 유발, 일종의 공명현상임), Galloping(바람의 방향과 직각인 방향으로 구조물이 거동하는 현상) 등이 있다.
타코마 브리지의 경우는 Flutter에 의한 발산진동이 붕괴의 원인입니다.


국내의 내풍설계

우리나라의 경우 도로교시방서에 주경간장이 200이상인 장대 특수교량의 설계에서는 정적 풍하중에 의한 설계결과에 대하여, 동적해석 및 풍동실험을 통하여 풍하중의 동적효과에 대한 교량의 공기역학적 안전성을 검토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일반 중·소지간의 교량에 대해서는 규정된 표준 풍하중을 산정하여 설계에 이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바람에 의한 교량의 동적 안전성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경간장 200m이내의 특수교량 설계시 일본도로협회의 “도로교내풍설계편람 (1991)”의 판정기준을 통해 동적설계의 필요성 여부를 판단하여 내풍안정성검토를 합니다. (턴키인경우나 하져..^^)
또한 보강형을 유선형으로 계획하여 와류등을 최소화시키고 Fairing이나 Damper등으로 내풍안정성을 확보하기도 합니다.


뉴 타코마 브리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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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교(Forth Railway Bridge)...3



포스교의 또다른 이야기....^^
포스교의 유지보수중 교체된 리벳을 판다고 하네요...^^
하나당 40파운드(약 8만원) 하네요...
하나 장만해볼까요? ^^

바로가기 : http://www.forthbridges.org.uk/rivet.htm


포스교의 구조이야기....^^
포스교의 구조는 캔틸레버 트러스 형식입니다.
얼마전 포스교 홈페이지 갔다가 재밌는 사진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포스교의 구조계의 예를 들은 사진입니다. ^^

이 사진은 설계자인 벤저민 베이커(Benjamin Baker)가 왕립 과학원(The Roya Institution)에 Catilever Truss 구조를 알기 쉽게 설명할 때 사용한 사진이라고 한다.
이 사진에 대하여 일본 토목기술자 타케이 켄이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의자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이 팔을 뻗어 의자를 받치고 있는 지팡이를 잡고 있다. 이는 두 개의 캔틸레버를 나타낸 것이다. 양쪽 인물의 안쪽 손에 잡혀 있는 작은 지팡이가 중앙부이고, 인물의 바깥 손에 매달려 있는 두 개의 벽돌을 쌓은 것이 캔틸레버 양쪽의 앵커 블록을 표시하는 것이다. 중앙부의 하중에 의하여 이 시스템에 단면력이 전달될 때, 두 사람의 손과 앵커 블록의 로프에는 인장력이 작용하고 지팡이와 의자의 다리엔 압축응력이 작용한다.
즉, 양쪽으로부터 중앙을 향해 솟아나온 트러스에 의해 중앙의 트러스가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진에서 재미난 것은 중앙에 있는 주인공은 일본인으로 일본 고우부 대학(현 도쿄대학의 전신)을 수석졸업한 '와타나베 요시이치'라는 사람이다. 그가 이 사진의 주인공이 되는 바람에 포스교을 설계했다 혹은 설계에 관여했다고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와타나베 요시이치는 보조기사로 연수차 참관(일명 구경?)한 것에 불과 했다..
모델이 된 이유는 체중이 가벼워서라나? 아뭏튼 그는 나중에 일본 토목사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고 하고 이 사진은 현재 뉴욕 철도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다시 재현한 사진...^^



포스교(Force Rail Bridge)...1 보기
포스교(Force Rail Bridge)...2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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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교(Forth Railway Bridge)...2



포스교는 제가 좋아하는 교량중 하나입니다.
제 블로그 상단메뉴 위에 있는 그림도 포스교이지요..^^;
하지만 포스교는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철의 괴물'이라는 악평을 받기도 합니다.
이유는 너무 무식하게(과잉)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포스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전에 잠깐 다른 교량 예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 교량은 바로 티교(Tay Bridge)입니다.

19세기 중엽 스코트랜드에서는 티교와 포스만 때문에 사람들이 내륙 깊숙히 우회하거나 도중에 배를 갈아타고 이동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2km가 넘는 이 만들을 교량으로 연결하는것은 당시로서는 엄두를 내지 못할 일들이었습니다.
이때 스코틀랜드의 철도회사 North British에서 설계기사로 근무 중이던 토마스 바우치(Thomas Bouch)가 티 교(Tay Bridge)를 건설을 제안하였고, 이 교량이 건설되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North British 회사는 즉시 건설을 추진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1871년 티 교의 공사가 착수되었으며, 당시의 기술로는 경간장 75m, 총연장 3,200m가 넘는 엄청난 장대교를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티교가 완공되고 2년도 되지 않은 1879년 12월 티교는 열차와 함께 중앙 수백미터가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 하였습니다. (티모센코 재료역학 책 표지에도 나왔었죠...^^)
이 사고는 이후 교량 건설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나라의 성수대교 처럼 말이죠...)



티교의 붕괴사고는 바로 뒤에 건설된 포스교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먼저 재료적으로 티교의 주요 붕괴 원인이었던 주철을 탄소함류량을 높인 강철(당시로는 신소재였죠..)을 사용하였습니다.
원래 포스교는 티교의 설계자였던 바우치가 현수교로 계획하였으나 티교붕괴사고로 바우치의 계획은 무시되었고 당시 촉망받는 토목기술자인 존 파울러와 벤자민 베이커의 수정안이 받아들여져 지금의 트러스교가 되었습니다.
당시 영국정부는 티교의 붕괴로 "무조건 튼튼한 교량"을 요구하였으며 가뜩이나 과잉설계된 포스교는 시공도중에도 설계 변경을 통해서 설계당시 강재중량(42000톤)에서 20%가 넘게 증가하여 완공시 51000톤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포스교는 세상에서 가장 '무식하게 튼튼한' 교량이 되었습니다. ^^;
훗날 기술자들은 포스교를 "이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철의 괴물", "포스교는 시대에 뒤떨어진 산물이다. 굳이 말하자면 유사 이전의 괴물공룡 브론톤사우루스의 기술이다."라고 악평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차량하중이 당시와 비교하여 엄청나게 증가한 현재도 아직도 건재하게 사용되고 있는건 당시의 "과잉설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


포스교(Force Rail Bridge)...1 보기
포스교(Force Rail Bridge)...3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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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토목기술자협회 선정 세계 10대 교량



세계 10대교량의 우리나라의 영종대교가 포함되어 있네요...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교량...
대학원때 영종대교 관련 프로젝트를 하느냐고 구조계산서를 본적이 있었습니다.
구조계산서는 '일본어'로 되어 있었습니다. -.-;;
전 우리나라 기술자들도 잘 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기술자들을 믿어주지 않는 풍토가 아쉽습니다.... -.-;;



시드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시드니 항에 위치한 오페라 하우스일 것이다. 하지만 오페라 하우스 맞은편에 세워진 하버 브리지 역시 오페라 하우스에 버금가는 시드니의 명물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량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건축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영국 출신 건축가 프란시스 그린웨이가 시드니와 하버 건너편의 북쪽을 연결하는 다리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 무려 1902년. 하지만 막대한 공사비로 인해 계획은 무산되었고, 1910년 토목학 박사였던 J. C. 브래드필드가 하버 브리지 건설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주정부에 재탄원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교량의 건설은 또 연기되어야만 했다. 결국 10여 년이 지난 1922년이 되어서야 브래드필드의 설계를 랄프 프리먼이 보완하고, 공모에 당선된 영국계 건축 회사 도만 롱(Dorman Long)에 의해 1932년 완공되었다.

4개의 철도 레일과 6차선의 도로를 가진 교량으로, 착공 당시 세계 최장의 아치교로 명예를 떨쳤다. 하지만 1931년에 세워진 미국의 베이언 브리지(Bayonne Bridge)에 0.6m 뒤진 기록으로 세계 최장의 아치교라는 명예를 내주었다. 전체 길이는 1,149m, 해면에서 도로까지의 높이는 59m, 싱글 아치 교량 중에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다리이기도 하다. 교량과 함께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는 1960년대에 세워져 가장 아름다운 건물과 교량의 완벽한 조화로 평가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하버 브리지 등반’이라는 독특한 패키지 상품을 출현시켜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인기를 더하고 있다.



우리에겐 금문교(金門橋)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골든 게이트교는 샌프란시스코 만(灣)과 태평양을 잇는 골든게이트해협에 설치되어 있는 현수교로, 개통 당시 교량에 대한 모든 기록을 갈아 치운 역사적인 건축물이다.

붉은색의 아름다운 교량이 주위의 경치와 조화를 이루어 짙은 안개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이 되었으며, 교량의 붉은 납칠을 담당했던 미술가 어빙 모로는 골든 게이트교를 가리켜 ‘세상에서 가장 큰 미술 조각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또한 차고 거센 조류와 안개가 많은 날씨, 수면 아래의 지형이 복잡해 교량 건설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측되었지만 4년이라는 단기간에 완공, 미국 토목학회에서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길이 2,825m, 너비 27m의 현수교로, 조셉 B. 스트라우스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1933년 1월 기초 공사를 시작으로 1937년 5월 개통되었다. 시속 160km의 풍속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된 것이 특징이며, 준공 이후 철저한 유지 관리를 위하여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보수·보강 공사를 펼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6차선의 유료 도로와 무료인 보행자 도로로 나누어져 있어 샌프란시스코를 교통 체증이 없는 도시로 만들어 주었다. 교량으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건축적인 미각이 부각되어 현대 가장 위대한 건축물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금문교(Golden Gate Bridge) 자세히보기


캐나다 퀘벡의 세인트 로렌스 강을 가로지르는 퀘벡교는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교량 설계자로 추앙받았던 테오도르 쿠퍼에 의해 1917년 완공되었다. 중앙경간 488m로, 현재까지도 가장 긴 경간을 가진 철도교라는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기록을 세우기 위해 96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인 사고가 있었다. 설계자인 쿠퍼는 비용과 피어(교량을 지지하는 기둥 모양의 기초)의 높이를 낮추기 위해 피어를 육지 쪽으로 61m 이동시켰는데,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긴 경간을 가진 교량으로서의 영광과 동시에 비극의 시초가 되었다. 교량이 230m 가량 건설되었던 1907년 당시 피어부의 기둥에서 좌굴 현상이 발생해 85명의 사상자를 낸 1차 사고가 발생한 것. 이어 1916년에는 작업 중 철근이 추락해 11명의 사망자를 낸 2차 사고가 발생하였다. 시공 과정에서 2번의 사고를 통해 완공되었지만, 압축재의 좌굴을 고려해 교량 기술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퀘벡교는 ‘강 위에 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전망대’라는 극찬을 받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퀘벡의 시내는 물론 멀리 몬트리올까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멋진 조망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잇따라 발표된 붕괴설로 대대적인 보강 공사가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인천의 장도와 영종도를 잇는 영종대교는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의 중추 공항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인천국제공항이 영종도에 건설됨에 따라 설계된 교량. 총길이 4,420m, 교량너비 35m, 주탑 높이 107m, 교각 수 49개로 2000년 11월에 완공되었다.

최근 미국 토목기술자협회가 선정한 ‘세계 10대 교량’ 중의 하나로, 세계적인 건축 잡지 가 선정한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교량’으로 선정되며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도로와 철도 병용 교량으로 건설되었으며, 주위의 바다 경관과 어울리는 미적 감각을 살리기 위해 국내 최초로 도로·철도 병용 3차원 자정식(自定式) 현수교로 건설되었다. 자정식 현수교란 케이블 양끝이 ‘앵커리지 블록’이라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에 고정되는 타정식과 달리 케이블이 교량의 몸체인 상판에 직접 지지되는 방식으로, 타정식보다 전체적인 외관이 아름다운 것이 특징이다. 특히 봄에는 녹색, 여름에는 흰색, 가을에는 노란색, 겨울에는 빨간색 등 계절별로 다양한 조명을 연출해 서해대교와 광안대교를 누르고 가장 아름다운 교량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일몰 후 매시 50분부터 10분 동안은 계절색 대신 청색 조명을 갖춰 조명색을 통해 시간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2001년에는 영종대교 육지 쪽 입구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영종대교기념관이 건립되어 영종대교의 설립 과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영종대교 자세히보기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북해와 접한 포스 만에 위치한 철도교로, 1890년 완공되어 프랑스의 에펠탑과 함께 19세기를 대표하는 철구조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교량에 대한 영국인들의 사랑은 타워 브리지를 능가하는데,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대명사였던 대영제국의 번영을 상징하는 건축물이 바로 이 포스교이기 때문이다.
교량으로는 처음으로 강철이라는 신소재를 사용해 ‘최초의 강철 소재 교량’이라는 기록을 세웠으며, 3개의 마름모꼴을 연결한 독특한 외관으로 유명해졌다.
총길이 2,530m, 너비 48m, 주탑 높이 137m로,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교각이 넓어져 안정감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최초의 설계자는 티교(T-Bridge)를 설계한 바우치였지만, 티교의 붕괴 이후 파울러와 베이커의 설계안이 채택되기도 했다. 1879년 티교의 붕괴 직후에 건설된 교량이기에 과잉설계되었다는 평가를 얻으며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철의 괴물’이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100여 년이 넘게 영국을 대표하는 교량으로 아직까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1964년에는 이 다리의 바로 서쪽 부근에 새로운 도로교인 ‘포스 로드교’가 건설되어 신구 교량의 독특한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포스교(Force Rail Bridge) 자세히보기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 근처에 위치한 타구스 강 하구를 횡단하는 타구스교는 1962년 스테인먼이 속한 미국계 컨소시엄에 의해 건설된 교량이다. 때문에 장식이 많고 화려한 미국식 현수교의 디자인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주탑의 X자형 장식은 당시에는 최초로 적용된 디자인 공법이었다.

타구스교는 원래 위층에는 도로교를, 그 아래층에는 철도교를 추가한 복층 구조로 설계될 예정이었지만 아직까지 철도 레일은 추가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철도교를 추가할 목적으로 만든 깊이 10.7m의 하단은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타구스 강의 수심은 기초의 깊이가 무려 79m에 달해 세계에서 기초가 가장 깊은 교량으로 손꼽힌다.


아카시 해협 대교는 고베와 아와지 섬을 연결하는 교량으로, 총길이가 3,911m에 달하는 거대한 현수교이다. 1998년 아카시 해협 대교가 완공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긴 교량으로 기록되었던 1,410m 길이의 영국의 험버 브리지는 2인자로 밀려났다. 연간 30여 회의 크고 작은 지진이 일어나는 고베 지역의 특성을 감안해 순간 최대풍속 80m/sec의 풍하중 및 리히터 규모(Richter scale) 8.5의 지지하중을 견딜 수 있는 방풍 및 내진설계로 건설된 것이 특징이다.

아카시 해협 대교의 압권은 바로 야경. 은은한 외관 조명에 감싸인 다리가 검푸른 밤바다에 비치면 진줏빛을 띤다고 해서 ‘펄 브리지’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일본의 가장 큰 섬인 혼슈와 네 번째로 큰 섬인 시코쿠를 잇는 연락교, 세토대교는 오카야마 현의 고지마를 기점으로 가가와 현의 사카데까지 세토 해(海)에 떠 있는 다섯 개의 섬을 6개의 다리로 연결하는 전장 1,230km의 대형 교량이다.

무엇보다 세계 최초의 철도와 도로의 복층 교량으로 4차선의 도로교 아래층에는 JR(Japan Railroad) 세토대교선이 달리는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교량 바로 곁에 세토대교 타워가 있어 오카야마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총 6개의 교량 중에서도 두 번째와 세 번째 교량에 해당하는 히츠이시지마교와 이와쿠로지마교는 총길이 792m, 중앙 경간이 420m인 쌍둥이 교량으로, 세토대교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교량이다.
자그마치 40년이라는 긴 시간과 엄청난 공사비가 소요된 세토대교는 1998년 완공 되었을 당시 ‘일본의 교량 건축 기술이 아니고서는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작품’이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세토 해는 일본 열도가 접하고 있는 바다 중에서도 일몰이 가장 아름다운 곳. 때문에 해질녘 세토대교에서 바라보는 일몰 광경은 일본 관광성의 홍보 엽서를 장식하고 있다. 또한 위치상으로는 세토 해(海) 내의 해상국립공원의 공중에 떠 있어 공원과 함께 오카야마 현 최고의 관광명소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언뜻 보기에도 아찔한 높이의 이 다리는 프랑스 남부의 미요(Millau)의 타른 강 계곡을 가로지르는 미요교이다. 에펠탑을 시공했던 프랑스 건축 회사 에파주(EIffage)가 건축해 더욱 유명해졌으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리'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지난해 12월 31일에 정식 개통된 이 다리는 단연 세계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데, 그 높이가 에펠탑보다 23m나 높은 343m에 달한다. 총 7개의 콘크리트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기둥의 길이는 75m에서 245m로 다양하다. 미요교가 개통됨에 따라 파리와 지중해를 육로로 곧바로 연결, 프랑스 내륙 육상 교통의 중심이 될 것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런던의 명물 중의 하나로 자리를 굳힌 타워 브리지는 대영제국이 절정기를 구사하던 1894년에 완성된, 템스 강의 가장 하류에 있는 가동교이다. 교역선이 지나갈 때는 90초 동안 다리가 팔(八)자 모양으로 열리는데, 전성기 때는 한 달에 700여 회가 개폐되었으나 양 끝을 잇는 간선도로의 교통량이

증가함에 따라 가동 부분을 여는 횟수를 줄여 1주일에 3~4회 정도만 개폐되고 있다.
템스 강의 다리 중에서 가장 멋진 자태를 자랑하는 타워 브리지는 완공 이후 단 한 번도 고장 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뜻밖에도 건축 당시에는 예술주의자들과 엔지니어의 조소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투박한 건축물 자체는 물론 한쪽으로 기울어진 서스펜션 체인과 축 늘어진 곡선 트러스 등이 조롱의 대상이었다. 때문에 1940년에 고딕 양식의 덮개를 벗겨내고 그 위에 유리 구조물을 입혀 현재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가동 부분의 위로 보행자용 통로가 설치되어 있으며, 벽면을 유리로 대체한 덕분에 런던탑 등 주변 경관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총길이 270m에 총중량이 1,100톤에 달하며, 당시 최고의 공학자였던 존 울프-베리와 조각가였던 호레이스 존스 경(卿)의 공동 작업으로 설계, 1886년 착공하여 8년 만인 1894년에 완공되었다. 강철 프레임 구조에 외관을 벽돌로 장식한 독특한 주탑부는 세계의 그 어느 다리에서도 볼 수 있는 디자인이며, 1980년부터는 다리 전체를 박물관으로 선포해 영국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
>>타워브리지 자세히보기


※ 출처 : 외환은행 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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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량은 단순히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도구입니다. 공학적으로 어쩌구 저쩌구 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접할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다리"를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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