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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와다리19

일본 간몬대교와 모지항 열도의 관문 가로지른 현해탄 '애환의 역사' 1. 일본 시모노세키시와 기타규슈시를 잇는 간몬대교(총 길이 1068m)의 위용. 주탑과 주탑 사이의 주경간이 712m, 수면에서 다리까지의 높이가 61m인 철제 현수교다. K형, 일전에 일본 시모노세키(下關)를 갔다 왔습니다. 가볍게 갔다가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왔네요. 그곳의 다리가, 아니 나루가 제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지 뭡니까. 나루와 다리로 보자면, 섬나라인 일본은 우리보다 더 많은 자산과 얘깃거리가 있지요. 시모노세키의 경우, 그게 우리와 무관하지도 않고요. 소재 확장 차원을 넘어 한 번쯤 능히 주목할 필요가 있었던 게지요. 먼 고대로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수많은 배들이 그곳에 들어갔고, 그곳의 많은 배들이 우리 쪽으로 왔지요. 동아시.. 2007. 12. 17.
구포다리를 위한 변명 동강난 이내 몸 거두고 나면 그 많은 추억은 어디 내려놓을까 부산 구포와 강서 대저를 잇는 구포다리(구포교). 많은 추억과 애환을 남겼으나 두 차례 붕괴를 겪고 철거될 운명을 맞고 있다. 구포다리 왼쪽은 부산지하철 3호선 교량이다. 박창희 기자 물의 공격은 무서웠다. 70여년을 굳게 앙버티던 무쇠 다릿발이 순식간에 뽑혀나갔다. 우지끈~ 19번 교각이 붕괴되자 길이 15m짜리 상판 4개가 연달아 떨어졌다. 노도처럼 밀려든 강물은 상판과 교각의 철근, 콘크리트를 곤죽으로 만들어 닥치는대로 집어삼켰다.(2003년 9월 14일) 2년 뒤 다시 홍수가 닥쳤다. 이번에는 21번 교각이 엿가락처럼 휘어져 부서졌고 상판 하나가 속절없이 또 날아갔다.(2005년 9월 17일) 수모였다. 그렇게 견고하다던 일제의 근대 기.. 2007. 12. 13.
향랑을 찾아서 불경이부·불사이군 절의 깃든 오태소에 붉은 아치 서다 "저기가 향랑이 투신 자살한 오태소지요." 구미 오태동의 한 주민이 어른들로부터 들어온 향랑의 마지막 행적을 이야기하고 있다. 박창희 기자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 경북 구미시 오태동 낙동강가에서 한 여성의 투신 자살사건이 발생했다. 그의 이름은 향랑(香娘), 나이는 19세. 평범한 서민(양인) 집안의 딸이었던 향랑은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고 계모 슬하에서 자라 17세에 같은 마을에 사는 14세의 칠봉에게 출가했다. 남편 칠봉은 성질이 괴팍했고 외도를 하면서 그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향랑은 3년만에 이혼하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왜 왔느냐, 죽어도 그 집에서 죽어라." 친정 부모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숙부에게 찾아가 의탁했지만 숙부는 조용히 .. 2007. 12. 12.
문경 진남교반 민초들의 애환부터 산업화의 탐욕까지 길 마다의 사연 ①문경시 마성면 고모산성에서 바라본 진남교반 전경. 오른쪽부터 영강을 지나는 신 국도 3호선(4차로)과 구 국도 3호선(2차로)이 보인다. 그 옆의 좁고 짧은 다리가 일제때 건설된 구 진남교다. 그 밑에 문경선 철교가 있고, 신 국도 3호선이 토끼비리를 관통한다. 맨 아래에 걸린 것은 최근 들어선 된섬교다. 산중 주막거리가 반갑다. 박 선달이 침을 꿀꺽 삼킨다. 막걸리 너 얼마만이냐. 한 사발 시키려는데 분위기가 영 수상쩍다. 주모는 보이지 않고 매미소리만 요란하다. 아직 개장이 안되었나. 예가 어딘가. 도리도표(道里圖表)를 꺼내 맞춰보니 문경새재 턱밑, 고모산성이렷다. 고모산 자락을 돌아 영강이 씩씩하게 흘러간다. 박 선달이 주막을 요모조모 살핀다. .. 2007. 12. 11.
영주 청다리 '주워온 자식' 그 은근한 위협과 해학의 발원지 경북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죽계제월교(청다리). 이곳에서 '다리 밑 자식'이란 말이 비롯됐다고 한다. 이곳의 죽계천은 선비촌과 소수서원을 끼고 흐른다. 박창희 기자 "넌 다리 밑에서 주워다 길렀다!" 어릴 때 누구나 한 두번쯤 들어봤을 농담이다. 이 소리를 들으면 괜시리 슬프고 심란했다. 엄마 아빠가 엄연히 있는데 주워다 길렀다니…. 존재의 뿌리를 흔드는 말이지 않는가. 마음 약한 아이는 "아니다"고 강변하다 끝내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 연사냐, 역모냐 '다리밑 자식'의 발원지는 경북 영주시 순흥면의 청다리라고 한다. 여기서 '다리 밑 자식'이 태어났다는 것. 전설은 두 갈래로 흐른다. 하나는 조선 중기 유생들의 연사(戀事)의 산물이란 거고, 또 하나는.. 2007. 12. 9.
을숙도의 다리들 이미 당겨진 활시위…저들은 언제나처럼 또 적들을 용서할까 을숙도 '똥다리'를 아시는지. 냄새를 맡았다면 당신은 을숙도의 낭만적 분위기를 아는 사람이다. 이 똥다리는-발음이 좀 뭣하기는 해도-가히 '문화재급 추억'을 간직한 곳이다. 여기서 똥배가 떴고 나룻배(도선)가 오갔으며 선남선녀들의 사랑과 우정이 싹텄다. 그 추억을 공유한 7080이라면 아마 콧등을 씰룩거릴 게다. 아릿한 '후각의 추억'이 강바람에 실려 코끝을 간지럽힌다. 바람 부는 낙동강 하구로 한번 나가볼거나. 을숙도 하단부 갯벌지대를 관통하는 명지대교 건설 현장. 하늘에서 찍은 사진인데 마치 거대한 활 시위가 당겨진 것 같다. 새들이 저걸 보고 위협을 느끼지 않을까. 사진 '습지와 새들의 친구' 제공● 분지(糞地)의 기억 "똥다리요? 아하, 그.. 2007. 12. 8.
들려라, 영도다리 반백년 넘긴 인연, 끝이 아닌데… 저 다리 다시 들리면 '금순이'도 오겠지 영도다리의 애환을 지켜보며 자갈치 앞바다를 쉼없이 오가는 영도 도선. 앞에 보이는 영도다리는 2010년께 도개 기능을 갖춰 확장 개통된다. 박창희 기자다리가 벌커덕 들린다. "히야~저것 봐라." "어, 다리가 다리를 드네." 구경꾼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기술이 마법과 통하던 시대, 도개(跳開)의 장관은 사람들의 넋을 빼놓았다. 그러다 어느날 철커덕 닫혀버린 다리. 추억은 파도를 탔고 들림은 추억이 되었다. 45도 각도로 번쩍 일어서던 도개의 추억이 되살아난다고 한다. 영도다리 복원 얘기다. 그 말 많고 시끄럽던 다리. 눈물과 상처, 기다림과 만남, 이별과 떠남의 근대 기념물. 우리들 추억의 고향. ● 자본이란 이름의 전차 영도다.. 2007. 12. 7.
나주 영산포 지워진 뱃길, 불꺼진 풍경 건너…등대가 추억만 밀고 옵니다 영산강! 하고 불러야 한다. '!'하나쯤 붙여야 남도의 비릿한 갯내와 숨죽인 슬픔, 혹은 시시껄렁한 얘기가 터져나온다. 그래야 얘기 속에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 얘기가 삶의 물비늘로 튄다. 영산강은 누님이 생각나는 강이다. 멸치젓 향기를 품은 억척 누님. 아무리 힘든 일도 제 물굽이에 받아 넘기시던 누님. 눈물마저 미소이던 강물, 목 메어 부르는 영산강, 부르다 목 멘 영산포. '배가 들어 멸치젓 향내에/읍내의 바람이 다디달 때/누님은 영산포를 떠나며 울었다….' 나해철의 시 '영산포1'를 들고 찾아간 전남 나주의 영산포. 영산강은 간밤의 장대비에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쿨렁쿨렁 흐르고 있었다. ①1950년 초 나주 영산포의 분주한 한때를 보여준다.. 2007. 12. 5.
저도 연륙교 '콰이강의 다리' 건너면 사랑의 마법 걸리리라 사랑의 마법을 믿는가. 믿지 않는다면 마산의 남쪽 끝 '저도'를 한번 가 보시라. 필시 마법의 지팡이가 당신의 식은 열정을 후려칠 것이니. 믿는다 해도 갔다올 만하다. 사랑의 마법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 사랑의 마법에 슬쩍 걸려들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저도를 갔다. 누구와? 초하의 탑탑한 바람과! 내륙의 강바람에 지친 일상이 '그 파란' 바닷바람에 씻기길 내심 바라면서. ● 손잡은 연인들 연인 한 쌍이 손을 꼭 잡은 채 마산 저도 '콰이강의 다리'를 건너고 있다. 오른쪽 상단 흰색 다리가 새 저도 연륙교이고, 그 옆의 것이 '콰이강의 다리'다. 아래 왼쪽은 구복예술촌의 미술관이다. 박창희 기자저도(猪島)는 마산시 구산면 구복리 구산반.. 2007.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