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로드의 교량이야기

일본 간몬대교와 모지항



열도의 관문 가로지른 현해탄 '애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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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 시모노세키시와 기타규슈시를 잇는 간몬대교(총 길이 1068m)의 위용. 주탑과 주탑 사이의 주경간이 712m, 수면에서 다리까지의 높이가 61m인 철제 현수교다.


K형, 일전에 일본 시모노세키(下關)를 갔다 왔습니다. 가볍게 갔다가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왔네요. 그곳의 다리가, 아니 나루가 제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지 뭡니까. 나루와 다리로 보자면, 섬나라인 일본은 우리보다 더 많은 자산과 얘깃거리가 있지요. 시모노세키의 경우, 그게 우리와 무관하지도 않고요. 소재 확장 차원을 넘어 한 번쯤 능히 주목할 필요가 있었던 게지요.

먼 고대로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수많은 배들이 그곳에 들어갔고, 그곳의 많은 배들이 우리 쪽으로 왔지요. 동아시아 해상교통의 요지인 현해탄(玄海灘)의 가슴이 까맣게 탈만도 하더군요. 거기에 양이전쟁이 있었고, 우호와 교류를 앞세운 간섭과 침략이 있었지요. 그게 역사였음을 현해탄은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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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본이 양이전쟁때 사용한 조슈포(長州砲). 간몬대교 아래 해변공원에 5기가 전시돼 있다.
● 간몬대교

K형은 보았던가요, 간몬대교(關門大橋)의 위용을. 간몬대교는 웅장하고 다이내믹했습니다. 다리를 이렇게 만들 수도 있구나! 문득 부산의 광안대교가 생각났는데 솔직히 다이내믹 면에선 광안대교를 압도하더군요. 일본 본토와 규슈섬을 잇는 막중한 역할 때문인지, 지리적 장엄미랄까, 그런 느낌도 안겨들었습니다.

철제 현수교인 간몬대교는 1973년에 완공됐고, 총 길이가 1068m입니다. 주탑과 주탑 사이의 주경간이 712m, 주탑의 높이가 133.8m더군요(광안대교의 주경간은 500m, 주탑 높이는 116.5m임). 수면과 다리(상판) 사이의 높이는 무려 61m(광안대교의 선박통과 높이는 35m)나 됐지요. 이 아득한 높이가 다이내믹함을 연출하고 있었지요.

이곳을 통과하는 각종 선박이 연간 25만5000척이나 된다는군요. 화물선이 가장 많고, 여객선 카페리 어선들이 그 다음을 잇고 있었지요.

철판을 잇대어 만든 격자구조는 무슨 설치예술 같았지요. 하늘빛과 바다빛을 받아 반짝이는 간몬대교를 보고 있자니, 살짝 질투가 나더군요. 이곳엔 다리만 있는게 아니라, 신칸센 철도와 국도 인도 등 각종 해저터널이 무려 7개나 된다는군요. 그런데 상부의 다리는 딱 하나. 존재감이 돋보일 만하죠.


● 겐페이소하

다리가 걸린 이곳이 그 유명한 간몬해협입니다. 야마구치현의 최서단에 위치하는 시모노세키시는 간몬해협을 끼고 기타규슈(北九州)시를 마주보고 있습니다. 이 해협은 국제항로이자 내해로 연결되는 통로로써 일본 해상교통의 요로라죠. 간몬해협의 길이는 27㎞, 폭은 500~1000m, 수심은 대략 12m 정도라고 하더군요. 조류가 세더군요. 최고 10노트(시속 18.5㎞)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 간몬해협은 안토쿠(安德) 천황의 패전지라더군요. 패전지란 말이 귀에 짠하게 박히더군요. 12세기 일본 헤이안시대 후기의 얘기입니다. 1180년 안토쿠 천황은 3세의 나이로 천황이 되었는데, 신하로 있던 무사 다이라 기요모리(平淸盛)와 미나모토 요리토모(源賴朝) 사이에 치열한 권력다툼이 벌어져 전쟁으로 비화하죠. 일본사에 나오는 '겐페이소하(源平爭覇)'입니다. 이때 천황의 할머니 고시라가와(後白河) 황후는 다이라(平)와 정을 통하는 사이였는데, 권력다툼은 미나모토의 승리로 끝납니다. 최후의 전장이 바로 시모노세키 앞바다인 단노우라(壇の浦)에서 있었는데 패전이 확실해지자 황후는 안토쿠를 안고 간몬해협에 뛰어들죠. 안토쿠 천황이 8세이던 1185년의 일입니다. 이후 미나모토는 가마쿠라막부(鎌倉幕府)를 열게 되고, 일왕은 700여년간 명목만 유지하죠.

안토쿠 천황이 죽은 후 사람들은 진흙으로 상을 만들거나 화상을 그려놓고 제사를 지냈다고 하지요. 1604년 송운대사 유정은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포로를 데려오기 위해 시모노세키를 방문해 그곳 아미다지(阿彌陀寺, 현 아카마신궁)에 모셔진 안토쿠 천황을 조문하는 글을 쓰지요. 17~18세기 시모노세키를 방문한 조선통신사들도 그를 기리는 시문을 남겼고요.

하고보니 안토쿠가 예사 역사인물이 아닙니다. 시모노세키시는 매년 5월 '센테이사이(先帝祭)'라는 제사를 지내고, 시민축제인 바칸 마쯔리(馬關まつり)를 통해 그를 대대적으로 추모합니다. 안토쿠는 시노모세키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인물이더군요.


● 조슈포

간몬대교 아래 해변 공원에는 단노우라 옛 전장지(戰場址)가 표시돼 있고, 당시 전투를 묘사한 동판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역사 속 전쟁의 의미를 되새기려 한 것 같았지요. 이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이 그 옆에 설치된 전시용 대포였습니다. 대포는 모두 5기로, 가장 큰 포신은 길이 3.56m, 구경 20㎝였습니다. 일명 조슈포(長州砲)라 불리는 대포인데, 역사적 사연이 있더군요. 막후 말기인 1864년 일본은 구미 열강과 양이(洋夷)전쟁을 벌입니다. 한국은 이즈음 척왜양이를 외쳤지요.

당시 일본은 간몬해협에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연합군과 맞서 싸웁니다. 도쿠가와 막부는 조슈포를 만들어 쏴 댔지만 역부족, 무참하게 무너집니다. 연합군인 프랑스는 전리품으로 조슈포를 자국으로 가져갑니다. 일본역사가 세계사에 개입하는 순간이지요. 이후 일본은 세계사의 조류에 휩쓸려 메이지유신으로 나아갑니다. 그때 뺏긴 조슈포를 가져와 복원, 전시한 것이 예의 대포였지요. 간몬해협을 굽어보는 조슈포에 군국주의의 그림자가 일렁거렸습니다.

에지마 기요시(江島潔·50) 시모노세키 시장은 이 대포를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개방을 요구한 연합군에게 도쿠가와 막부는 무너졌지만, 조슈번(시모노세키 정치세력)은 끝까지 싸웠다. 그 증표가 이 대포다. 당시의 기술차이를 인정하고 외국문화를 받아들여 변화한다는 표시로 이 대포를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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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타규슈시 모지항의 블루윙 도개 모습. 일본에서 유일한 보행자 전용 개폐식 다리다.
● 모지항 레트로

K형, 모지항은 보았겠지요? 워낙 유명한 곳이라 인터넷에도 사진이 많이 올라와 있더군요. 시모노세키에서 다리 하나 건너면 닿는 곳이라 어렵지않게 들를 수 있었습니다. 모지항은 고색창연한 관광 포구더군요. 이름하여 '모지항 레트로(門司港レトロ)'. 레트로(Retro)란 '옛날을 그리워하다' 또는 '회고적'이란 의미로, 이곳의 콘셉트를 설명해줍니다.

1889년 개항한 모지항은 기타규슈시의 공업화와 함께 국제무역항으로 번영을 구가합니다. 전성기땐 월 200여 척의 외항선이 들어왔고, 연간 600만여 명의 관광객이 찾았다더군요. 그러나 대동아전쟁을 겪으면서 쇠퇴, 퇴락한 항구가 되었죠. 그런 모지항을 복원, 정비해 운치있고 낭만적인 테마파크로 탄생시켰더군요. 모지코역을 비롯, 구 모지 미쓰이클럽, 구 오사카상선, 구 모지세관, 국제우호기념도서관 등 어느 것 하나 볼거리 아닌 것이 없었지요. 구 모지 미쓰이클럽은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묵었던 곳이라고 홍보하더군요.

블루윙 모지가 특히 인상적이었지요. 일본에서 유일한 보행자 전용 개폐식 다리인데, 들리는 모습이 장관이었습니다. 푸른 바다가 정말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는 것 같았지요. 다리는 하루에 6번 개폐되며 배가 통과하지 않아도 제 혼자 시간 맞춰 들렸지요. 문득 영도다리가 떠올랐습니다. 영도다리가 다시 들린다면 어떤 풍경이 될까요. 처음인데도 어쩐지 그리운 도시 모지코. 마음의 평온과 감동을 안고 그곳을 벗어나면서 생각했습니다. 아, 포구가, 나루가 저렇게 다시 태어날 수 있구나….


● 불의 산

시모노세키시의 전망대 히노야마(火之山) 공원에 올라 간몬해협을 굽어봅니다. 왜 불인가? 양이전쟁 때 포격을 당해 불바다가 되어 이런 이름이 붙었답니다. 일본인들은 당한 역사를 이처럼 되씹어서 기억합니다. 조슈포가 그렇고 불의 산이 그렇지요.

히노야마 공원에서 보는 간몬대교와 해협은 눈부신 풍경이었습니다. 멀리 기타규슈의 모지항이 보이고 더 멀리로 현해탄이 가물거렸지요. 해발 268m의 불의 산은 후끈거렸습니다. 날씨 탓만이 아니었지요. 한국과 일본의 인연과 악연, 침략의 역사, 새로운 교류….

시모노세키는 우리에게 아픈 기억을 남긴 곳입니다. 정한론(征韓論)의 씨앗이 뿌려졌고, 한반도 침략의 발판이 됐던 시모노세키 조약이 여기서 체결됐지요. 관부연락선이 일제 징용자들을 싣고 부린 곳도 이곳이지요. 해협의 아스라한 구름 속에 조선통신사 행렬이 보이고, 그 뒤를 19세기 일본의 정한론자들이 뒤따르는 환상은, 불의 산을 더욱 후끈거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역사는, 교류하고 믿음을 쌓아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아, 현해탄은 어쩌자고 거센 조류를 간몬해협으로 몰아넣어 이토록 역사를 힘들게 하는지.

나루와 다리는 단순한 낭만과 회고 정서가 아니라, 어제를 되돌아보고 내일을 여는 전략이자 전술임을 시모노세키에서 새삼스레 배웠습니다. K형, 언제 한번 같이 시모노세키에 가시구료.


출처 : 국제신문 - 박창희 기자의 감성터치 나루와 다리
본 포스트는 박창희 기자님의 허락하에 게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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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다리를 위한 변명



동강난 이내 몸 거두고 나면 그 많은 추억은 어디 내려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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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구포와 강서 대저를 잇는 구포다리(구포교). 많은 추억과 애환을 남겼으나 두 차례 붕괴를 겪고 철거될 운명을 맞고 있다. 구포다리 왼쪽은 부산지하철 3호선 교량이다. 박창희 기자

물의 공격은 무서웠다. 70여년을 굳게 앙버티던 무쇠 다릿발이 순식간에 뽑혀나갔다. 우지끈~ 19번 교각이 붕괴되자 길이 15m짜리 상판 4개가 연달아 떨어졌다. 노도처럼 밀려든 강물은 상판과 교각의 철근, 콘크리트를 곤죽으로 만들어 닥치는대로 집어삼켰다.(2003년 9월 14일)

2년 뒤 다시 홍수가 닥쳤다. 이번에는 21번 교각이 엿가락처럼 휘어져 부서졌고 상판 하나가 속절없이 또 날아갔다.(2005년 9월 17일)

수모였다. 그렇게 견고하다던 일제의 근대 기술이 아닌가. 통짜 교각받침에 기둥 3개를 1조로 엮어 교각 56개를 촘촘히 세운 게르버 판형교(鈑桁橋)가 이렇게 무너지다니….

동강난 구포다리(구포교). 부산 경남을 처음 이었던 다리. 눈물과 추억, 소통의 근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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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랑을 찾아서



불경이부·불사이군 절의 깃든 오태소에 붉은 아치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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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가 향랑이 투신 자살한 오태소지요." 구미 오태동의 한 주민이 어른들로부터 들어온 향랑의 마지막 행적을 이야기하고 있다. 박창희 기자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 경북 구미시 오태동 낙동강가에서 한 여성의 투신 자살사건이 발생했다. 그의 이름은 향랑(香娘), 나이는 19세. 평범한 서민(양인) 집안의 딸이었던 향랑은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고 계모 슬하에서 자라 17세에 같은 마을에 사는 14세의 칠봉에게 출가했다. 남편 칠봉은 성질이 괴팍했고 외도를 하면서 그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향랑은 3년만에 이혼하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왜 왔느냐, 죽어도 그 집에서 죽어라." 친정 부모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숙부에게 찾아가 의탁했지만 숙부는 조용히 개가를 종용했다. 향랑은 하는 수 없이 다시 시댁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남편의 횡포는 더 심했고 이번엔 시아버지까지 개가를 권유했다.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된 향랑은 자신의 심경을 초녀(樵女·나무하는 여자 아이)에게 간절하게 전하고 '산유화가(山有花歌)'를 구슬프게 부른 뒤 낙동강 지류인 오태소에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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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진남교반



민초들의 애환부터 산업화의 탐욕까지 길 마다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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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문경시 마성면 고모산성에서 바라본 진남교반 전경. 오른쪽부터 영강을 지나는 신 국도 3호선(4차로)과 구 국도 3호선(2차로)이 보인다. 그 옆의 좁고 짧은 다리가 일제때 건설된 구 진남교다. 그 밑에 문경선 철교가 있고, 신 국도 3호선이 토끼비리를 관통한다. 맨 아래에 걸린 것은 최근 들어선 된섬교다.

산중 주막거리가 반갑다. 박 선달이 침을 꿀꺽 삼킨다. 막걸리 너 얼마만이냐. 한 사발 시키려는데 분위기가 영 수상쩍다. 주모는 보이지 않고 매미소리만 요란하다. 아직 개장이 안되었나.

예가 어딘가. 도리도표(道里圖表)를 꺼내 맞춰보니 문경새재 턱밑, 고모산성이렷다. 고모산 자락을 돌아 영강이 씩씩하게 흘러간다. 박 선달이 주막을 요모조모 살핀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옳거니, 예천 땅 낙동강 삼강 뱃가의 그 주막일세. 넉살 좋고 입심 센 주모 할매 죽은 뒤 누가 지킬까 했는데 여기에 한 살림 떡하니 펼쳐놓았구나. 2005년 10월 나이 구십에 세상 버리신 뱃가 할매 유옥련. 이 시대의 마지막 주모. 내심 반가움에 다가가 마루에 엉덩이를 걸쳐보지만 허전하구나. 박 선달은 풀려던 괴나리봇짐을 고쳐 매고 뱃가 할매를 떠올린다.

주막은 초가 두 채다. 경북 예천의 삼강주막과 문경 영순의 달지주막을 그대로 재현한 거란다. 우리나라 마지막 주막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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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청다리



'주워온 자식' 그 은근한 위협과 해학의 발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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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죽계제월교(청다리). 이곳에서 '다리 밑 자식'이란 말이 비롯됐다고 한다. 이곳의 죽계천은 선비촌과 소수서원을 끼고 흐른다. 박창희 기자

"넌 다리 밑에서 주워다 길렀다!"

어릴 때 누구나 한 두번쯤 들어봤을 농담이다. 이 소리를 들으면 괜시리 슬프고 심란했다. 엄마 아빠가 엄연히 있는데 주워다 길렀다니…. 존재의 뿌리를 흔드는 말이지 않는가. 마음 약한 아이는 "아니다"고 강변하다 끝내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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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숙도의 다리들



이미 당겨진 활시위…저들은 언제나처럼 또 적들을 용서할까

을숙도 '똥다리'를 아시는지. 냄새를 맡았다면 당신은 을숙도의 낭만적 분위기를 아는 사람이다. 이 똥다리는-발음이 좀 뭣하기는 해도-가히 '문화재급 추억'을 간직한 곳이다. 여기서 똥배가 떴고 나룻배(도선)가 오갔으며 선남선녀들의 사랑과 우정이 싹텄다. 그 추억을 공유한 7080이라면 아마 콧등을 씰룩거릴 게다. 아릿한 '후각의 추억'이 강바람에 실려 코끝을 간지럽힌다. 바람 부는 낙동강 하구로 한번 나가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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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려라, 영도다리



반백년 넘긴 인연, 끝이 아닌데…
저 다리 다시 들리면 '금순이'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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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다리의 애환을 지켜보며 자갈치 앞바다를 쉼없이 오가는 영도 도선. 앞에 보이는 영도다리는 2010년께 도개 기능을 갖춰 확장 개통된다. 박창희 기자
다리가 벌커덕 들린다. "히야~저것 봐라." "어, 다리가 다리를 드네." 구경꾼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기술이 마법과 통하던 시대, 도개(跳開)의 장관은 사람들의 넋을 빼놓았다. 그러다 어느날 철커덕 닫혀버린 다리. 추억은 파도를 탔고 들림은 추억이 되었다. 45도 각도로 번쩍 일어서던 도개의 추억이 되살아난다고 한다. 영도다리 복원 얘기다. 그 말 많고 시끄럽던 다리. 눈물과 상처, 기다림과 만남, 이별과 떠남의 근대 기념물. 우리들 추억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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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영산포



지워진 뱃길, 불꺼진 풍경 건너…등대가 추억만 밀고 옵니다

영산강! 하고 불러야 한다. '!'하나쯤 붙여야 남도의 비릿한 갯내와 숨죽인 슬픔, 혹은 시시껄렁한 얘기가 터져나온다. 그래야 얘기 속에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 얘기가 삶의 물비늘로 튄다.

영산강은 누님이 생각나는 강이다. 멸치젓 향기를 품은 억척 누님. 아무리 힘든 일도 제 물굽이에 받아 넘기시던 누님. 눈물마저 미소이던 강물, 목 메어 부르는 영산강, 부르다 목 멘 영산포.

'배가 들어 멸치젓 향내에/읍내의 바람이 다디달 때/누님은 영산포를 떠나며 울었다….' 나해철의 시 '영산포1'를 들고 찾아간 전남 나주의 영산포. 영산강은 간밤의 장대비에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쿨렁쿨렁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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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연륙교



'콰이강의 다리' 건너면 사랑의 마법 걸리리라

사랑의 마법을 믿는가. 믿지 않는다면 마산의 남쪽 끝 '저도'를 한번 가 보시라. 필시 마법의 지팡이가 당신의 식은 열정을 후려칠 것이니. 믿는다 해도 갔다올 만하다. 사랑의 마법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

사랑의 마법에 슬쩍 걸려들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저도를 갔다. 누구와? 초하의 탑탑한 바람과! 내륙의 강바람에 지친 일상이 '그 파란' 바닷바람에 씻기길 내심 바라면서.


저도연륙교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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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황산나루



옛 포구의 쇠락을 슬퍼할 필요없다
저 황홀한 노을도 하루의 소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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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시 강경읍 황산나루(강경포)의 노을. 금강을 물들이며 붉게 타는 노을은 '아름다운 소멸'을 생각하게 한다. 논산시 제공

황산대교를 지났다. '갱갱이'다.
갱갱이는 충남 논산 근방에서 강경(江景)을 이르는 말.
강경을 충청도 사투리로 길게 발음한 거란다.
해가 금강을 건너 서해로 스르르 넘어간다. 노을이 곱다.
읍내에 들어서자 젓갈 냄새가 온몸에 감겨온다. 향긋하다.
비린내를 풍길 것이란 예상이 보기좋게 빗나갔다.
'갱갱이'는 정겨운 우리말임에도
요즘 쓰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한다.
소멸 직전의 토속어 한마디가 강경포(황산나루)의 성쇠를 대변하는 듯하다.
포구가 쇠락하면서 말이 헐거워졌고, 동시에 삶이 팍팍해졌다.
강경포는 그렇게 시간에 떠밀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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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배다리



1500여년 밀양 나루史, 이젠 배 없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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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무겁다. 한쪽으로 쓸린다. 이고 지고 어디를 가시나. 지게를 진 사람, 연장을 든 일꾼, 상투 틀고 탕건 쓴 양반, 머리에 수건 두른 여인네. 모두 카메라를 의식한 표정들. 까까머리 아이의 천진한 눈빛, 배고픔을 노려보는 듯. 가운데 앉은 이는 퉁소를 부시나 피리를 부시나. 뱃전의 장정은 돌아앉아 강물을 보고, 사공은 어깨 빠져라 노를 젓는다. 밀양강(남천강) 푸른 물에 영남루와 능수버들이 두둥실. 옆의 빈 배는 누굴 태우려나…. 1910년대의 수묵담채 같은 사진 한 장. 조선시대 끝자락이 잡힐듯 말듯, 불러도 대답없는 나룻배.

아스라한 흑백의 대비가 추억의 누선을 건드린다. 100여년 전 영남루엔 사람이 드물구나. 영남루 좌우의 능파각과 침류각, 오른쪽에 정좌한 천진궁은 옛 자리 그대로다. 휘영청 흘러내린 누각의 처마선에 달빛이 내려앉으면 아름드리 소나무에 두견새 울었으리. 한 수 읊을거나. 누각 처마 끝에서 바라보면 한스럽게 굽이치는 밀양강. 인적없는 삼문동, 처마를 맞댄 번잡한 시가. 식민의 시간을 지나는 문화여 풍류여.

저건, 가솔린 자동차. 운전대 잡은 이는 러시아 신사인가, 일본군인가. 멀찌감치서 걸어오는 사람들, 한복에 중절모, 코트에 털모자 쓴 이들. 강 건너편의 산뜻한 일식 가옥들. 식민의 땅에 세워진 근대의 자취, 조선의 눈물들. 배다리(舟橋 또는 浮橋). 일렬 횡대로 도열한 배가 열대여섯 척. 난간 끝에 붙은 이름 '南川橋'. 밟고 지나가면 출렁거릴듯 낭창거릴듯 슬픈 역사. 흘러간 밀양강의 어제.


사용자 삽입 이미지일제시대에 가설된 밀양 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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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정암나루와 정암교



나룻배 다시 띄워지면 우리님 마중이나 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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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솥바위 아잉교!" 의령 정암리 주민인 김호 씨가 정암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 씨는 50년 넘게 정암과 정암교를 지켜봤다고 한다. 정암 왼쪽이 정암나루터다.


솥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것도 무쇠 가마솥이. 장작불 땐 무쇠솥등은 얼마나 따뜻하던가. 끓어넘치는 솥의 눈물, 가마솥맛 소고기국은 또 어떻고…. 솥은 인류를 먹여살린 도구다. 석기시대엔 돌솥이, 토기시대엔 토기솥이, 청동기시대엔 동복(銅腹)이, 철기시대엔 철복(鐵腹)이 밥을 해 냈다. 이후 알루미늄제·스테인리스제 솥이 나오고 첨단 전기압력솥이 등장했지만, 진짜 밥맛은 역시 무쇠 가마솥이다. 세발 달린 솥을 말하는 '정(鼎) 자'는 뜻풀이가 아주 좋다. 정보(鼎輔)는 삼정승을 뜻함이요, 정갑(鼎甲)은 과거시험에 최우등으로 급제한 세 사람이며, 정식(鼎食)은 진수성찬이고, 정내(鼎鼐)는 재상의 자리, 정조(鼎祚)는 임금의 자리다. 풍수지리설로도 '정(鼎)'은 재물을 상징하고, 주역의 정괘 역시 발전을 뜻하는 괘다. 이걸 보면 가마솥이 저절로 끓어오를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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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나루서 두향을 찾다



퇴계의 고운 연인 푸른 물에 몸던질때 못견딜 그리움도 함께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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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를 사랑한 여인' 기생 두향의 애틋한 전설이 서린 충북 단양의 장회나루. 강 건너 산 기슭에 두향의 묘(□표시)가 보인다. 박창희 기자


"두향아, 얼굴이 어둡구나. 무슨 일이 있는 게냐?"

"아무 일도 아니옵니다."

"허면 내가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그런 것이냐?"

"…."


두향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먹을 갈던 벼루와 화선지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화선지에 눈물이 스며들었다. 퇴계 선생이 경상도 풍기로 떠난다는 소식은 두향에게 청천벽력이었다. 9개월만의 이별. 견뎌야 한다는 마음과 잊어야 한다는 마음이 맹렬하게 싸웠다. 목숨같은 정을 끊고 어떻게 견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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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도와 창선 · 삼천포대교



전설속 마부할매는 꿈을 이루고
현실의 늑도주민은 배가 그립다
할매가 빨래할 때 사용하던 서답돌로
섬과 삼천포를 잇는 징검다리를 바다에 놓으려 했지
물론 전설이지만 언젠가는 다리가 놓일거라 믿었어
오랜 세월을 깜냥껏 살아온 섬사람들
다리 생겨 좋긴 한데 먹고살기 바빠져 예전같잖아
배와 함께 돌아가던 섬 일상도 이젠 여유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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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도 주민 천정남 씨가 마부할매 전설이 서린 징검다리 돌무더기를 가리키고 있다. 전설의 조화인가 싶게, 늑도에도 다리가 놓였다. 박창희 기자


늑도에 가 보셨는지. 경남 삼천포항과 남해 창선 사이의 작은 섬. 면적이 0.46㎢,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뛰면 20분 만에 닿는 곳. 말 굴레(재갈)를 닮아 굴레섬(勒島)이라 이름된 곳. 겉으로는 별로 볼 것이 없다. 횟집 너댓 개와 올망졸망 야산에 들러붙은 어촌 그리고 바다뿐이니까. 그러나 속에 감춰진 역사는 유구하다. 이 섬에서 청동기 문화가 발아했고, 2000여년 전엔 중국·낙랑·일본을 잇고 엮는 중계무역이 이뤄졌다. 고고학 자료들은 그 이상을 말해준다. 패총과 무덤유구, 주거지, 토기가마, 한·중·일의 각종 토기류, 반량전·오수전 같은 고대 동전까지 엄청난 유물이 출토됐다. 이로써 한반도 초기 철기시대가 되살아났다. 말하자면 선사·고대사의 타임캡슐 같은 곳이 늑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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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나루와 남도대교



섬진강 물빛 짙어지면 봄님 온다더니
젖먹이처럼 늘어섰던 나루 없고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진 '줄배'엔
장꾼 대신 알음알음 관광객만 찾아
이젠 남도대교가 兩道 사투리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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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노를 저을 수 있다면…." 전남 구례군 운천나루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손영일 씨가 섬진강 줄배의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이 나룻배는 평상시 할일이 거의 없다. 박창희 기자

'옥화주막'은 시끌벅적했다. 한 무리의 길손들 틈에 장꾼들이 끼어 막걸리를 들이켜고 있었다. 식탁에는 희미하게 김이 나는 재첩국과 아사삭한 은어튀김이 올려져 있다. 육자배기라도 터져나올 법한 주막 문전에서 '옥화'는 파전을 부치느라 바빴다.

-장사가 잘 됩니까?

"잘 되지요. 항시 장이 서니까예."

-하루에 얼마나 팝니까?

"짬이 없지예. 평일엔 한 백명, 주말엔 한 이 삼백 명이 오구만요."

-이 집 특미가 뭔가요?

"더덕동동주, 녹차동동주도 좋고, 은어튀김, 산채비빔밥도 좋아예. 시아버지밥상이 특미라요. 참게장 은어튀김 묵 재첩국이 다 나오니까. 그란데 와 꼬치꼬치 묻소?"

경남 하동 화개장터 내 '옥화주막'의 안주인 김옥순(48) 씨는 이것저것 묻는 기자가 신기한지 대답하다 말고 눈을 치켜 뜬다. 후덕한 눈매다. 그에게서 김동리 소설 '역마(驛馬)'의 옥화를 연상한 건 주막 이름 때문이다. 통성명을 하고 보니 가운데 이름 '옥'자도 같다. 묘한 인연이다 싶어 다잡고 이야기를 하려드니 "바쁘다"면서 그의 남편(정병주·53)을 불러 앉힌다.

난데없이 붙들린 정 씨가 주섬주섬 이야기 보따리를 푼다. "화개장이 되살아난 덕에 장사가 잘 됩미더. 문 연 지 7년 됐고예. 여기 음식은 친환경 농산물이라요. 저 아래 악양들에서 재배한 야채를 식재료로 쓰니까요."

이야기가 시원시원하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그로부터 섬진강 화개-운천나루의 한 시절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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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개나루와 남지철교



굴곡의 세월 흐르는 강위로 다시 희망이 가로지르고…
"일제 잔재라고 말도 많지만 우리 피땀서린 엄연한 삶의 일부"
낙동강 민초들 애환과 추억의 상징
나루터 옛 명성은 역사속 기록만
신·구 철교, 상생으로 나아가야

사용자 삽입 이미지남지철교는 곧 신·구 임무교대를 한다. 앞쪽의 하늘색 철교가 일제때 건설된 것이고, 그 뒤편 주황색의 우람한 철교가 오는 6월 개통되는 신 철교이다. 박창희 기자


●먼 데서 온 손님

2006년 7월16일, 창녕 남지철교에 귀한 손님 두 분이 찾아왔다. 일본인 나가지마(中島) 여사와 그의 장성한 아들이었다. 60대 중반의 이 여인은 감회에 젖어 철교를 살폈다. 녹슨 철골을 손으로 만지고 리벳 이음까지 관찰하는 모습은 여느 관광객과 달랐다. 이들은 놀랍게도, 일제시대 남지철교와 의령 정암교를 설계한 이야마(井山安藏) 씨의 딸과 손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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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직후 폭파된 남지철교를 배경으로 여학생들이 사진을 찍었다. 교각 끝에 한 사람이 강을 보고 서 있다. 이 사진은 지난해 철교사진전 때 공개됐다. 사진제공=남지철교보존대책위원회
당시 이들을 안내한 남지철교보존대책위원회(이하 남지철교보존회) 김부열(45) 위원장에 따르면, 나가지마 여사는 아버지의 생전 자취를 더듬기 위해 방한한 것이었다. 이들은 남지철교와 함께 의령 정암교도 찾았으며, 70여년 전의 자료까지 가지고 왔다고 한다.

기이한 해후였다. 우리의 슬픈 역사가 그들에겐 또다른 추억으로 숙성돼 있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그들에게도 아픈 가족사가 있었다.

"남지철교를 설계한 이야마 씨는 33살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고 해요. 그 분의 부인, 즉 찾아오신 일본 손님의 어머니(현재 94세라고 함)는 그때 홀로 되었고 세 자녀를 키우며 살았다고 합니다. 처음엔 함께 방문하려고 했는데 노령과 건강을 걱정하여 따님과 손자만 방한하게 되었다는군요. 그러니까 이들의 방한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자 연로한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었던 것 같아요."(김부열 위원장)

이 사연을 전한 김 위원장은 "그때 만남이 계기가 되어 가끔씩 이메일을 주고 받고 있다"면서 남지철교가 현해탄을 건너 민간외교까지 담당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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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묵은 여울'의 외나무다리



복사꽃 필 때면 철거돼야 하는 운명
겨우내 장정들은 오가며 바지런을 떨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삶의 외줄같은 경북 예천군 보문면 신월1리의 외나무다리. 길이 80여m에 폭이 한뼘 정도지만, 주민들은 나무 한짐을 지고도 자박자박 잘도 걸어다닌다. 박창희 기자


외나무다리는 외롭다. 사람이 건너가도 한 명이고 달빛이 내려앉아도 한 뼘이다. 그래서 임이 생각나는지 모른다. 복사꽃 능금꽃 그늘에 어리는 눈썹달같은 임이. 그런 눈썹달을 닮은 어여쁜 임이 있을테다. 지금은 싸늘한 별빛 속에 숨어 들었을지라도. 아무래도 좋다. 떠오르는 것이 추억이고 삶의 너끈함이라면.

경북 예천군 보문면 신월1리 내성천(乃城川)에는 삶의 외줄같은 외나무다리가 있다. 이 다리는 초겨울에 태어나 봄이 되면 죽는다. 죽고 살고는 자연이 결정한다. 내성천에 눈석임물이 섞이고 강물이 불어나면 외나무다리는 발붙일 곳을 잃는다. 강물이 줄어 유순해지는 초겨울이 되면 주민들은 다시 어기영차 힘을 합쳐 외나무다리를 놓는다. '뗐다-놓았다' 하는 것이 번거롭지만, 목숨같은 농사가 거기 매달려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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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떠나고 남았나...



이 글은 느림과 빠름, 만남과 떠남에 대한 명상이다. 20세기를 숨가쁘게 건너오면서 우리가 잃은 것과 얻은 것, 붙잡은 것과 놓쳐버린 것을 짚어보려 한다. 생각하면 많은 것들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흘러갔다. 단순한 소통을 문화라 하고 질주를 문명이라 우기진 않았던가. 나는 빠름 속에서 느림의 급소를 포착하고자 한다. 이것을 이야기할 상징적이고 구체적인 장소가 나루와 다리이다. 다리에 새겨진 시간과 추억을 안주로 어느 나루터 주막에서 술 한잔 걸치고 싶다. 부디 나의 나룻배에 당신은 행인이 되시길…. 잠자는 감성을 깨워 떠나는 여행의 아침은 설렌다.



● 마지막사공

사용자 삽입 이미지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대암나루

최보식(65) 씨는 낙동강 중류 대암나루(대구시 달성군 구지면)의 현역 뱃사공이다. 요즘도 그는 나룻배(발동기가 달린 철선)를 부리며 강변 주민들을 실어 나른다. 40여년 간 끈덕지게 황소처럼 나루 일을 해왔다. 꿈적일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일하고도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대암나루 코밑에 건설되고 있는 우곡교(고령군 우곡면~달성군 구지면 연결)가 조만간 개통되면 그의 나룻배는 할 일이 없어진다. 우곡교 개통식이 그의 뱃사공 졸업날이다. 우곡교 개통식엔 내로라는 분들이 참석하겠지만, 최 씨의 뱃사공 졸업식엔 그 혼자 뿐일 지 모른다.

이창학(54) 씨는 안동 하회나루의 뱃사공이다. 최 씨와는 달리, 그는 관광용 나룻배를 부린다. 배는 무동력이며 삿대로 움직인다. 낙동강의 하회 뱃나들(나루)에서 강 건너 부용대까지 오가는데, 3년 새 전국적인 명물이 되었다. 4월 초 나룻배가 깨어나 관광객을 맞으면 하회의 봄은 터질듯 부풀어 오를 것이다. 다행히 하회마을엔 아직 다리가 없다.

하지만 하회 조금 아래인 광덕 잠수교 위에 무쇠같은 다리가 건설되고 있다. 부용대로 이어지는 자동차 길을 새로 놓는 것인데, 새 다리가 놓이고 나서도 하회 나룻배가 온존할 지 궁금하다.

최 씨와 이 씨는 아마도 우리 시대 마지막 뱃사공일테다. 누가 사공의 노래를 불러줄 것인가. 춘삼월이지만 나루에 부는 바람이 아직은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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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기자의 나루와 다리.....



'나루'와 '다리'...
어찌보면 비슷하기도 하고 서로 상반된 것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주 오래전, 교량공학이라는 단어조차 없었을때 부터 나루는 묵묵히 사람과 물건과 문명을 건너편으로 실어날랐습니다. 지금 다리가 하듯이 말이죠...

하지만 다리가 건설되면서 부터, 시간이 돈이다 라는 말이 나오면서 부터 나루의 역활은 다리에게 옮겨갔으며 '나루'라는 말은 점점 추억속으로 잊혀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소개하려던 글이 하나 있습니다.
"국제신문 박창희 기자의 나루와 다리"라는 기획기사입니다.

거대한 쇳덩어리 다리를 차를타고 휘익 지나가면서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천천히 걸어가면 느낄수 있는것 처럼(정말이에요... 한번 걸어보세요...^^)
너무나 바쁘게만 돌아가는 우리의 삶을 잠시나마 돌아보게 만드는 글들입니다.

제 홈 메인에 써놓은 공학적으로 어쩌구하는 '교량'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있는 '다리'에 대한 글들입니다.
썬로드의 홈페이지가 궁국적으로 지향하고 싶은 내용이기도 합니다.

구조계산 하고있는 분들, 도면그리고 있는 분들, 그리고 리포트 쓰러 오신 분들...
하고 있는일 잠시 접고 천천히 읽어보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아래는 "서론"정도 되겠네요...
앞으로 천천히 하나씩 소개해 드릴께요....

이 글은 느림과 빠름, 만남과 떠남에 대한 명상이다. 20세기를 숨가쁘게 건너오면서 우리가 잃은 것과 얻은 것, 붙잡은 것과 놓쳐버린 것을 짚어보려 한다. 생각하면 많은 것들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흘러갔다. 단순한 소통을 문화라 하고 질주를 문명이라 우기진 않았던가. 나는 빠름 속에서 느림의 급소를 포착하고자 한다. 이것을 이야기할 상징적이고 구체적인 장소가 나루와 다리이다. 다리에 새겨진 시간과 추억을 안주로 어느 나루터 주막에서 술 한잔 걸치고 싶다. 부디 나의 나룻배에 당신은 행인이 되시길…. 잠자는 감성을 깨워 떠나는 여행의 아침은 설렌다.

 

2007. 11. 20.(화)
박창희 기자님께 국제신문에 연재된 '나루와 다리'를 제 블로그에 올리는것을 허락받았습니다. 앞으로 계속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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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량은 단순히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도구입니다. 공학적으로 어쩌구 저쩌구 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접할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다리"를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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