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당겨진 활시위…저들은 언제나처럼 또 적들을 용서할까
을숙도 '똥다리'를 아시는지. 냄새를 맡았다면 당신은 을숙도의 낭만적 분위기를 아는 사람이다. 이 똥다리는-발음이 좀 뭣하기는 해도-가히 '문화재급 추억'을 간직한 곳이다. 여기서 똥배가 떴고 나룻배(도선)가 오갔으며 선남선녀들의 사랑과 우정이 싹텄다. 그 추억을 공유한 7080이라면 아마 콧등을 씰룩거릴 게다. 아릿한 '후각의 추억'이 강바람에 실려 코끝을 간지럽힌다. 바람 부는 낙동강 하구로 한번 나가볼거나.
을숙도 하단부 갯벌지대를 관통하는 명지대교 건설 현장. 하늘에서 찍은 사진인데 마치 거대한 활 시위가 당겨진 것 같다. 새들이 저걸 보고 위협을 느끼지 않을까. 사진 '습지와 새들의 친구' 제공 |
"똥다리요? 아하, 그거 모르면 하단·장림 사람 아니죠. 하단 가락타운 뒤편 갈대밭 선창에 그게 있었어요. 낙동강 쪽으로 길쭉하니 50m 넘게 뻗어 있었고 거기서 똥배가 '물건'을 실어 냈어요. 그 옆에 을숙도 가는 나룻배가 있었고요. 아베크족이 많았는데 들큼한 냄새를 맡고도 모두 즐거워했지요. 푸하하~"
장림 토박이인 김경철(46) 씨는 똥다리 얘기가 나오자 물 만난 고기처럼 펄떡거렸다. 얘기 사이로 웃음이 비어져나오더니 급기야 한바탕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괴정 대티터널 아래에 분뇨수집장이 있었고 거기서 관로를 달아 하단 똥다리까지 연결했대요. 가끔씩 관이 터져서 웃지못할 촌극이 벌어졌죠." 김 씨는 환경단체 '습지와 새들의 친구'(습새) 사무국장이다. 을숙도에 누구보다 진한 추억을 묻어둔 그가 을숙도 지킴이가 돼 있는 것도 인연이다.
낙동강 하구에서 50여 년간 고기잡이를 해온 황석용(64) 씨는 을숙도에서 그 '물건'으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30여 년 전의 일을 그는 어젯일처럼 기억했다. "옛날엔 똥 오줌이 모다 거름 아임미꺼. 을숙도에 그게 부려지면 말리고 삭여 거름으로 썼지예. 을숙도에 한 천평 정도 농토가 있었는데 하루 서른 장군씩은 져 날랐을겁미더. 70년대 초반까지 그럭하고 살았지예."
장군이란 말이 또 후각을 자극한다. 장군은 묽은 액체 따위를 담아 옮길 때 쓰는 용기다. 흔히 '똥장군' '오줌장군'으로 불린다.
부산 위생사업소에 물어보니 당시 분뇨처리 방식이 '산화 분지처리'라고 일러준다. 지금의 을숙도 2차 쓰레기매립장 일대에 넓직한 구덩이를 파서 분뇨를 부어두면, 상등수(윗물)와 하등수(속물)로 분리돼 일부는 떠내려가거나 산화되고 나머지는 거름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 같은 방식은 1973년 부산 사상구 감전동에 위생사업소가 설치될 때까지 이어졌다.
을숙도 똥다리는 하구둑 물막이 공사와 함께 자취를 감췄다. 김경철 씨는 예민한 촉수로 1980년대 초반 분위기를 더듬는다. "83년 9월 하단 갈대 숲속 '전원'에서 친구들과 송별식 하고 군대를 갔는데, 제대하고 돌아오니까 뭡니까, 다 없어졌던걸요. 송별식 때 본 을숙도가 마지막 모습이었죠."
이 시기를 전후해 하단 에덴공원과 그 일대 갈대밭에 들어서 있던 전원, 강나루, 강촌 같은 술집들은 보따리를 쌌다. 하구둑 건설 뒤 을숙도에는 분뇨처리장이 정색을 하고 들어섰고, 1990년대에 두 차례에 걸쳐 쓰레기가 압축되어 매립됐다. 을숙도 재활용을 고심하던 부산시는 지난 6월 매립장 들머리에 낙동강하구 에코센터를 열었다.
숱한 개발 와중에도 20여 년 전 을숙도를 말해주는 표식이 하나 남아 있다. 제1, 제2쓰레기매립장을 연결하는 을숙교 아래 수로에 있는 '나무다리'다. 다 뜯겨 나가고 '두 다릿발'만 앙상하게 남았다. 보기에 따라 설치예술 같기도 하고 절간의 당간지주 같기도 하다. 나룻배가 다니던 시절, 사람들은 을숙도에 들어가면 통과의례처럼 저 다리를 건넜다. 이곳은 갯벌지대 특유의 분위기와 운치 때문에 한때 영화촬영지로 인기였다. 이문열 연작 소설 '젊은날의 초상' 제2부인 '하구'의 배경이 여기다. 황석용 씨는 "소와 구르마(수레)가 저 다리를 이용했고 젊은 사람들이 오면 한껏 폼을 잡고 사진을 찍곤 했다"면서 "언제부턴가 이곳을 '똥다리'라 부르더라"며 싱긋 웃었다.
을숙도 추억의 나무다리(일명 똥다리). 위는 1990년 초의 정경, 아래는 요즘 모습이다. 사진 사하구청 제공 |
말 많던 명지대교는 을숙도 하단부를 휘어져 지나간다. 강서구 명지동 75호 광장~사하구 신평동 66호 광장을 잇는 총 연장 5.2km(왕복 6차로)의 매머드급 다리다. 하늘에서 찍은 공사현장 사진을 보니 을숙도 하단부에 거대한 활시위가 당겨진 모습이다. 새들이 하늘에서 보면, 자기들을 쏘는 활로 착각할 것도 같았다. 다리가 이처럼 활처럼 휘어진 것은 새들의 땅을 한 치라도 지키려는 보존군(軍)의 요구를 개발군(軍)이 일부 수용한 결과다.
2005년 1월 시작된 공사는 2009년 말에 끝난다. 현 공정률은 28%. 다릿발(교각)은 본선과 램프구간을 포함해 76개가 들어가는데, 쓰레기매립장을 관통할 4개를 제외하곤 거의 다 박혔다.
예견은 됐으나 쓰레기매립장에 교각을 놓는 문제가 복병으로 떠올랐다. 쓰레기를 파내야 하고 침출수 처리 역시 간단치 않다. 환경단체들의 눈초리는 어느 때보다 날카롭다. 시공사인 명지대교(주) 측은 까다롭기는 해도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명지대교(주) 홍보 담당 김정훈 과장은 "처음엔 오픈컷(개착식 터파기)으로 하려다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좇아 연직차수벽(흙막이) 공법을 검토 중"이라며 친환경 시공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복병도 따져보면 자업자득이다. 문화재보호구역에 쓰레기를 매립해 놓고 그 위에 다릿발을 세우려니 문제가 복잡해졌다. 시공사 측은 을숙도와 명지대교의 '공존'을 강조한다. 김 과장은 "교각 수를 줄이려고 경간(교각간 거리)을 당초 45m에서 120~125m로 넓혔고, 조명등엔 갓을 씌워 빛 산란을 최소화하며, 교량 상판은 저소음재를 쓸 계획"이라고 설명한다.
'공존'은 과연 가능할 것인가.
● 조감도(鳥瞰圖) 생각
철새들의 낙원이 실낙원(失樂園)으로 바뀌고 있는데도, 새들은 '새(乙) 많고 물 맑은(淑) 섬'을 잊지 않고 찾아온다. 인간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골고루 끌어안은 을숙도는 처절하게 짓밟히면서도 '자연친화'를 얘기한다. 환경이 악화되긴 했으나 을숙도 일대의 습지 생태계는 여전히 보존 가치가 크다. 환경론자들은 이를 지상명령으로 여긴다. 박중록 '습새' 운영위원장도 그런 명령을 수행하는 이 가운데 한 명이다. 취재에 동행하며 그는 '공존의 조건'을 주로 얘기했다.
"저 소리 좀 들어보이소."
-무슨 소리죠?
"스스스~ 갈대에 스치는 바람소리 아닙니까. 이렇게 좋은 곳이 대도시에서 10분 거리에 있는데, 그 가치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갯벌 수로에 있는 저건 도요새인가요.
"청다리도요, 뒷부리도요네요. 저기 깝짝대며 걷는 놈은 깝짝도요입니다. 어, 조심하소. 길 위로 말똥게가 올라왔네요."
-게들이 왜 도로에 기어오르죠?
"원래 저거들 땅 아닙니까. 매립장 없었으면 맘 놓고 놀건데…."
-저 명지대교 다릿발들이 아프죠?
"그러죠. 가슴에 못이 박히는데…. 반면교사로 삼아야지요. 환경 변화를 꼼꼼히 모니터링해서 더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지요."
을숙도 남단에 이르자 옅은 해무가 밀려들었다. 갯벌에 빼곡 들어차 있어야 할 세모고랭이들이 형편없이 말라가고 있었다. 그는 "이곳은 겨울철 고니가 노는 자리예요. 작년엔 3000여 마리가 왔지요. 세모고랭이가 고니들의 먹이인데, 저게 왜 없어진단 말입니까"라며 격분을 토한다.
갯벌의 환경지표식물인 세모고랭이들이 왜 시름시름 앓을까. 환경단체들은 명지대교가 원인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명지대교(주)는 작년의 낙동강 홍수로 인한 토사유입이 원인일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결과만 있고 원인은 아리송하다. 어쩌면 이는 앞으로 닥칠 후유증의 예고편인지 모른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새들은 훤히 조감(鳥瞰)할 게다.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새들은 그들의 기억 창고에 낱낱이 담아 두었다가 나중에 필름처럼 풀어놓을테니까. '공존'의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이유다.
출처 : 국제신문 - 박창희 기자의 감성터치 나루와 다리
본 포스트는 박창희 기자님의 허락하에 게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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