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물빛 짙어지면 봄님 온다더니 젖먹이처럼 늘어섰던 나루 없고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진 '줄배'엔 장꾼 대신 알음알음 관광객만 찾아 이젠 남도대교가 兩道 사투리 이어
"다시 노를 저을 수 있다면…." 전남 구례군 운천나루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손영일 씨가 섬진강 줄배의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이 나룻배는 평상시 할일이 거의 없다. 박창희 기자
'옥화주막'은 시끌벅적했다. 한 무리의 길손들 틈에 장꾼들이 끼어 막걸리를 들이켜고 있었다. 식탁에는 희미하게 김이 나는 재첩국과 아사삭한 은어튀김이 올려져 있다. 육자배기라도 터져나올 법한 주막 문전에서 '옥화'는 파전을 부치느라 바빴다.
-장사가 잘 됩니까?
"잘 되지요. 항시 장이 서니까예."
-하루에 얼마나 팝니까?
"짬이 없지예. 평일엔 한 백명, 주말엔 한 이 삼백 명이 오구만요."
-이 집 특미가 뭔가요?
"더덕동동주, 녹차동동주도 좋고, 은어튀김, 산채비빔밥도 좋아예. 시아버지밥상이 특미라요. 참게장 은어튀김 묵 재첩국이 다 나오니까. 그란데 와 꼬치꼬치 묻소?"
경남 하동 화개장터 내 '옥화주막'의 안주인 김옥순(48) 씨는 이것저것 묻는 기자가 신기한지 대답하다 말고 눈을 치켜 뜬다. 후덕한 눈매다. 그에게서 김동리 소설 '역마(驛馬)'의 옥화를 연상한 건 주막 이름 때문이다. 통성명을 하고 보니 가운데 이름 '옥'자도 같다. 묘한 인연이다 싶어 다잡고 이야기를 하려드니 "바쁘다"면서 그의 남편(정병주·53)을 불러 앉힌다.
난데없이 붙들린 정 씨가 주섬주섬 이야기 보따리를 푼다. "화개장이 되살아난 덕에 장사가 잘 됩미더. 문 연 지 7년 됐고예. 여기 음식은 친환경 농산물이라요. 저 아래 악양들에서 재배한 야채를 식재료로 쓰니까요."
이야기가 시원시원하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그로부터 섬진강 화개-운천나루의 한 시절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젖먹이 같던 나루들
경남 화개와 전남 운천을 잇는 섬진강의 남도대교(위). 화개장터에 세워진 '역마상'. 이곳은 김동리 소설 '역마'의 무대이다.
"20여년 전엔 큰 배가 다녔지예. 여기섬진강은 물살이 있고 수심이 깊어 사공 두 사람이 앞뒤에 붙어 삿대질을 했어예. 소도 타고 개도 타고 농기구도 싣고 그랬심더. 장날이 되면 배가 정신이 없었고예."
화개 태생인 정 씨는 전남 구례쪽 간문초등학교(지금은 폐교됨)를 나왔다. 하동 사람이 구례 가고, 구례 사람이 하동 오고 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강이 가로막고 있었음에도 화개(탑리)와 운천은 한동네 같았다. 화개에 5일장(1, 6일)이 서면 화갯골 사람들은 고사리·더덕·감자를, 하동 포구에선 김 미역 명태를, 구례 사람들은 쌀과 보리를 가져와 팔았다. 부산·마산의 배도 드나들었다고 한다.
나루터 시절로 돌아가자 정 씨는 신바람이 나 있었다. "강이 제 기능을 할땐 화개-운천나루 아래로 염창나루, 금천나루 한동나루 섬진나루가 줄줄이 강의 젖먹이처럼 붙어 있었지예. 그 많던 기 간다 온다 소리도 없이 다 가 버렸네 허허."
멍하니 강쪽으로 시선을 던진 정 씨는 "이제 섬진강 나룻배 이야기를 해줄 사람도 몇명 없다"면서 "배를 보려거든 강 건너편 '쉴만한 물가'로 가 보라"고 귀띔해 준다.
●'쉴만한 물가'의 변화
목마른 길손의 심정으로 '쉴만한 물가'를 찾는다. 남도대교를 건너 구례 간전면 쪽으로 접어드니 민물고기·장어구이 전문이라 써 붙인 '쉴만한 물가' 식당이 나왔다. 식당을 끼고 물가로 내려가니 나룻배가 한 척이 떠 있다. 이곳이 운천나루이다. 순한 강바람에 배가 화답하듯 까딱까딱 한다. 주인을 잃지 않고 용케 버텨온 게 가상하다. 선주는 '쉴만한 물가'의 주인 손영일(54) 씨다.
"3년째 배가 쉬고 있어요. 원래 줄배였죠. 2004년까지 군에서 보조금이 나왔는데 중단되면서 줄이 끊어졌어요. 가끔씩 놀러온 사람들이나 학생들이 배를 태워달라고 하는 것 말고는 늘 저렇게 혼자 떠 있다오."
손 씨는 지난 20여년간 운천나루의 변화를 지켜봤다고 한다. 뱃사공은 아니지만 구례 운중(운천·중대리)도선위원회에도 참여했고 1990년대 초 줄배가 들어설땐 직접 밧줄을 매기도 했다.
"나룻배가 잘 돌아갈땐 지역의 정보센터였어요. 장터의 쌀값이 얼마인지, 고사리와 더덕이 많이 나왔는지, 누구의 결혼식이 열리고 누가 죽었는지 따위의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오갔으니까요."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자, 손씨는 "사람이 있어야지"하면서 식당에서 일하는 두 사람을 불러온다. 묵은 나룻배에 사람이 오르자 배가 뒤뚱, 생기를 얻는다. 나루터 언덕과 강가의 미루나무 그림자가 강물에 거꾸로 비친다. 찰칵! 찰칵! 수묵화같은 추억 한 컷이 연출된다. 손 씨의 얼굴에 알지 못할 회한이 드리워진다.
"제가 도와줄 건 이런 거죠. 방송사도 가끔씩 오고는 해요. 이 배도 15년쯤 됐으니 퇴역할 날이 멀지 않았죠. 관리가 쉽지 않아요. 요즘엔 FRP선이 유행이지만 그래도 강에서는 목선이 좋죠. FRP선은 전복되거나 사고로 물이 차면 가라앉지만, 목선은 뒤집어져도 다시 떠오르거든요. 롤링, 그러니까 배의 야릇한 흔들림도 FRP선은 도저히 목선을 못따라와요."
운천나루 일대에는 수달이 많다. 자연 생태가 아직 괜찮다는 말이다. 그러나 섬진강 옥류도 날이 갈수록 탁해지고 있다. 옥색 강물 곳곳에 씻기지 않을 세제 거품이 떠다닌다. 섬진강 오염은 나루선이 끊기고부터 더 심해지고 있다고 손 씨는 걱정했다.
●잡으려는 욕망들
화개장터 주변의 물길은 세 갈래로 길과 함께 흐른다. 한 줄기는 전라도 구례쪽에서 오고, 한 줄기는 경상도쪽 화개협(花開峽)에서 흘러 내려 섬진강으로 빠져든다. 쌍계사로 가는 길은 선보러 나온 숫처녀처럼 발그레하게 부풀어 올랐다. 화개천의 버들개지는 속이 터져라 제살을 찢고 있다.
외지 길손들은 남도대교를 배경으로 사진찍기에 바쁘다. "차 오는디 싸게 찍으랑께!" "화개 녹차 맛 좀 보자카이!" 엿장수 가위 소리를 뚫고 걸쭉한 경상도·전라도 사투리가 뒤섞인다.
남도대교(길이 358.8m·너비 13.5m)가 개통된 것은 2003년 7월28일이다. 구례 간전면과 하동 화개 사이의 먼길이 엎어지면 코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지금은 광양의 시내버스가 화개까지 들어온다.
이 다리는 '동서화합' '지역감정 극복'이란 정치적 상징이 입혀져 있다. 사업비 217억 원은 나라에서 132억 원을 충당하고, 경남도·전남도가 85억 원을 분담했다. 설계의 컨셉트도 화합이다. 이른바 닐슨 아치교라는 것이다. 교량 상판을 케이블로 매달아 하중을 메인 아치에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형태로만 보면 동과 서가 무지개를 그리며 손을 맞잡은 모습이다. 양쪽 난간 아치를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칠해 강물에 비치면 태극 문양이 나타난다. 교각 사이 3개 경간을 산 능선처럼 만들어 지리산과 백운산(광양)이 이어지게 형상화한 것도 흥미롭다.
한데, 너무 요란하지 않은가. 호들갑스럽다는 인상을 지우기도 어렵다. 하동과 구례는 1970년대 지역감정이란 말이 있기 전까지 하나의 생활권이었다. 불편했을지언정 나룻배 하나로도 그런대로 소통이 되었다. '화합' '지역감정' 어쩌구 하지 않아도 화합이 되었다는 말이다. 굳이 다리를 놓아야 했다면, 낮은 자세로 대자연에 다가가야 하지 않았을까. 여인의 저고리 옷고름 같은 섬진강엔 거대한 철골아치보다 자연친화형 가교가 제격이다.
지나친 욕심이 부조화와 이질감을 불러왔다. 저 서늘한 정치적 아치에 무지갯빛 추억이 감돌게 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가야할 것 같다.
"교통이 편리해진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줄배의 줄이 끊겼고, 산골의 인심과 인정으로 영위되던 강촌의 살가운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손영일 씨)
'잡으려는 욕망이 오히려 떠나게 만드는 것을…'. 소설 '역마'의 주제 의식이 새삼 가슴을 짓누르는 화려한 봄날이다. 섬진강의 봄은, 아름답지 않은 것조차도 아름답게 만들어서 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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