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속 마부할매는 꿈을 이루고 현실의 늑도주민은 배가 그립다 할매가 빨래할 때 사용하던 서답돌로 섬과 삼천포를 잇는 징검다리를 바다에 놓으려 했지 물론 전설이지만 언젠가는 다리가 놓일거라 믿었어 오랜 세월을 깜냥껏 살아온 섬사람들 다리 생겨 좋긴 한데 먹고살기 바빠져 예전같잖아 배와 함께 돌아가던 섬 일상도 이젠 여유가 없지
늑도 주민 천정남 씨가 마부할매 전설이 서린 징검다리 돌무더기를 가리키고 있다. 전설의 조화인가 싶게, 늑도에도 다리가 놓였다. 박창희 기자
늑도에 가 보셨는지. 경남 삼천포항과 남해 창선 사이의 작은 섬. 면적이 0.46㎢,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뛰면 20분 만에 닿는 곳. 말 굴레(재갈)를 닮아 굴레섬(勒島)이라 이름된 곳. 겉으로는 별로 볼 것이 없다. 횟집 너댓 개와 올망졸망 야산에 들러붙은 어촌 그리고 바다뿐이니까. 그러나 속에 감춰진 역사는 유구하다. 이 섬에서 청동기 문화가 발아했고, 2000여년 전엔 중국·낙랑·일본을 잇고 엮는 중계무역이 이뤄졌다. 고고학 자료들은 그 이상을 말해준다. 패총과 무덤유구, 주거지, 토기가마, 한·중·일의 각종 토기류, 반량전·오수전 같은 고대 동전까지 엄청난 유물이 출토됐다. 이로써 한반도 초기 철기시대가 되살아났다. 말하자면 선사·고대사의 타임캡슐 같은 곳이 늑도다.
●늑도 사람들
사천시에 속해 있는 늑도. 2000여년 전엔 한중일 뱃길을 잇는 중계 무역지였다.
늑도에는 98세대 230여명의 주민이 애오라지 고기잡이하며 살고 있다. 여름에는 볼락과 농어 문어를, 겨울엔 노래미를 주로 잡는다. 주민들의 관심사는 역사가 아니라 고기잡이다. 늑도 주민들에게 역사는 끌어안을 수도, 던져버릴 수도 없는 애물이다. 말없는 역사를 안고 말 못하고 살아온 삶. 밭을 갈면 토기 쪼가리가 나오고 갯벌을 뒤지면 옹기, 철기 쪼가리가 걸린다고 한다. 사적(제 450호)으로 지정돼 있는 것도 주민들로선 솔직히 달갑지 않다.
늑도어촌계장을 지낸 천정남(66) 씨는 "딴 건 잘 몰라도 늑도의 흙 하나는 기가 막히지"라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우리가 어릴 땐 개흙을 뭉쳐 구슬을 만들어 놀곤 했는데, 오래 놔 둬도 깨지지 않았어요. 흙이 좋았다는 말이지. 이 흙으로 토기를 만들고 했을거야."
고조 때부터 늑도에서 배를 부리고 살았다는 천 씨는 50년 전의 실화라며 늑도 '금부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주민이 밭에서 우연히 금부처를 발견했대요. 언제 것인지는 모르지. 집에 가져와보니 순금이야. 그걸 쪼개 식구들 이빨 해 넣는 데 쓰고 나머지는 장농에 보관했다더만. 경찰이 그걸 알고 압수해 갔다는 것까지 우리가 알고 있지."
정작 귀담아 들을 전설은 마부할매 서답돌 이야기였다. 늑도의 북서쪽 해안에는 무게 2~4t씩 되는 돌덩이가 거대한 석성(石城)처럼 돌무더기를 형성해 삼천포 쪽으로 놓여 있다. 이 중 큰 돌 하나가 '마부할매'가 빨래할 때 쓰던 '서답돌'이라고 한다. 마부할매가 늑도-삼천포를 잇는 징검다리를 바다에 놓으려 했다는 것이다. "물론 전설이지. 다리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강했다는 말이 아닐까 싶소. 이런 전설이 있어 언젠가는 다리가 놓일 거라고들 했지."
전설의 조화인가 싶게, 창선-삼천포대교는 지금 늑도 중앙부를 지난다. 꿈같은 일이 실현된 지도 벌써 6년째다.
유채꽃밭으로 변한 초양도에서 바라본 창선·삼천포대교. 야경(오른쪽)도 독특한 풍치를 자아낸다.
●다리가 바꾼 세상
늑도를 관통하는 창선-삼천포대교는 21세기 교량공학의 걸작이란 찬사를 듣는다. 형식과 내용, 주제에서 모두 그렇다. 세계 어디에 이처럼 화려하고 늠름한 다리가 있던가.
교량은 모두 6개로 세트처럼 연결돼 있다. 사천시 대방동에서 출발하면 접속교-삼천포대교(사장교)-초양교(스틸 아치교)-늑도대교(PC박스 상자형교)-단항대교(스틸 아치교)-엉개교(PSC빔교)를 한달음에 통과한다. 총 연장 3.4km. 빨리 가고 싶지 않다. 형형의 모양과 색색의 자태로 이어진 연륙(連陸)·연도교(連島橋)는 나그네를 기어이 차에게 끌어내리고야 만다. 다리마다 인도가 있어 작정하고 걸을 수도 있다. 단, 바람 맞을 각오는 해야 한다. 남해의 섬과 섬 사이는 해수가 빠르게 흐르므로 바람이 세다. 이달 초 초양도를 찾았을 땐 유채꽃이 만발해 섬과 바다, 다리에 색색의 물감을 풀어놓은 듯 했다. 초양도는 은은한 유채향에 넋을 잃고 있었다.
항공사진을 보면 창선-삼천포대교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바다와 섬, 교량이 엮은 감동의 파노라마. 삼천포항에서 물수제비뜨듯 담방담방 뛰어나간 자잘한 섬들이 도로에 굴비 두릅처럼 엮여 있다. 이건 숫제 다리이기 이전에 그림이고, 교통이기 이전에 시다.
삼천포 고향 바다를 '환한 꽃밭 같다'고 노래한 박재삼 시인의 말처럼, 천 년전의 바람이 다시 불고, 그 바람에 바다는 아직도 간지럼을 태운다. 바람은 바다를 유혹하고 바다는 바람에 몸을 맡긴다. 삼백리 한려수도가 다리에 '놀아나고' 있다.
●행정선은 끊기고
삼천포항 유람선 선착장에 세워진 박재삼의 '아득하면 되리라' 시비.
다리가 놓인 후 늑도엔 행정선이 끊겼다. '차가 다니는데 뭔 배냐'는 것이 끊긴 이유라지만, 차가 없는 주민들은 불편하기만 하다.
"다리 놓인 뒤로 배가 안와요. 삼천포 버스가 하루 다섯 번 오는데 늑도대교 입구까지 가야 타요. 동네에서 한참을 가야 해요. 버스 놓치면 택시를 불러야 하는데 한 콜이 3000원이라. 노인네들이 와 툴툴거리지 않겠소? 행정선 다닐 때는 동네 코 앞에 배가 왔고 요금도 1000원이면 왕복을 했는데…."
늑도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석정자(여·65)씨의 말이다. 다리 놓이고부터는 자장면 배달도 안되고 통닭을 시키면 배달비가 붙는다고 석 씨는 투덜댔다. 육지서 늑도로 시집 온 첫 외지인이라는 그는 "지난 45년간 늑도는 인정으로 똘똘 뭉치고 살았던 곳"이라면서 "다리가 생겨 좋기는 한데 저 먹고 살기에 바빠 단합이 잘 안된다"고 말했다.
1960년대까지 늑도엔 나룻배가 있었다. 돛을 달고 다니는 목선이었다. 학섬 신도 초양도를 넘겨다보며 삼천포항까지 가는데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그후 70년대에 똑딱선(일명 야키다마)이 등장했고, 뒤이어 시에서 지원하는 디젤엔진을 단 행정선이 다녔다. 섬의 일상은 배와 함께 돌아갔다. 느린 만큼 여유가 있었고, 가난한 만큼 나눔이 있었다.
다리가 놓인 늑도와 초양도엔 행정선이 끊겼으나 인근 신도(15가구 거주)에는 여전히 행정선이 다닌다. 요즘 늑도와 신도 사람들은 서로 서로 부러워한다. 다리가 가져온 섬 지역의 역설적인 명암이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섬에서 깜냥껏 살아온 이들. 펄떡이는 어깨로 고기를 건져올려 인정과 유대로 함박웃음을 피우던 사람들은 지금 장중한 대교 아래서 무엇을 타야할지, 어디로 가야할지를 고민한다.
●아득함에 대하여
늑도의 변화는 나그네를 잠시 아득하게 만든다. 얻으면 잃고, 잃으면 얻는 것인가. 무엇이 삶의 겉멋이고 속멋인가. 문명은 정녕 인간 편인가. 늑도의 4월 해풍은 역사의 주문(呪文) 같은 난감한 질문을 던져 놓고 대답을 해 보라고 채근한다.
가파른 늑도의 진출입로를 낑낑 돌아 늑도대교에 오른다. 이 곳이 늑도 유적 발굴지라고 하는데 아무런 표식이 없다. 일부 유적은 도로에 밀려 제대로 발굴이 되지 않은 채 파묻혔다고 한다. 물 위를 걷는 기분으로 삼천포로 빠지니 유람선 선착장에 시비 하나가 멀거니 바다를 보고 서 있다.
'해와 달, 별까지의/거리 말인가/어쩌겠나 그냥 그 아득하면 되리라//사랑하는 사람과/나의 거리도/자로 재지 못할 바엔/이 또한 아득하면 되리라…'(박재삼 '아득하면 되리라' 부분)
고향과 가난을 숙명처럼 짊어지고 살다간 시인이, 난감한 질문에 한가지 답을 해주는 것 같다. 사람과의 거리, 문명을 향한 간격은 아무리 잰걸음으로 걸어도 좁혀지지 않는다는 것. 사랑은, 그리고 자연과 임은, 아득한 거리에 있음이니.
늑도 주민들은 화려한 개발을 꿈꾸지만 현실은 아득하기만 하다. 육지를 그리워하던 섬들은 이제 또다른 갈망에 목말라한다. 아득하여라, 문명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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