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강의 다리' 건너면 사랑의 마법 걸리리라
사랑의 마법을 믿는가. 믿지 않는다면 마산의 남쪽 끝 '저도'를 한번 가 보시라. 필시 마법의 지팡이가 당신의 식은 열정을 후려칠 것이니. 믿는다 해도 갔다올 만하다. 사랑의 마법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
사랑의 마법에 슬쩍 걸려들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저도를 갔다. 누구와? 초하의 탑탑한 바람과! 내륙의 강바람에 지친 일상이 '그 파란' 바닷바람에 씻기길 내심 바라면서.
● 손잡은 연인들
연인 한 쌍이 손을 꼭 잡은 채 마산 저도 '콰이강의 다리'를 건너고 있다. 오른쪽 상단 흰색 다리가 새 저도 연륙교이고, 그 옆의 것이 '콰이강의 다리'다. 아래 왼쪽은 구복예술촌의 미술관이다. 박창희 기자 |
섬은 '코딱지'만하다. 전체 해안선 길이가 10㎞, 최고봉인 용두산이 203m, 인구가 37세대 87명(6월 말 기준)이다. 대부분 산지이고 경지는 9900여 ㎡에 불과하다. 섬의 모양은 마치 돼지 같다.
이 외딴 섬에 연륙교가 놓인 것이 1987년. 길이 170m, 폭 3m, 높이 13.5m의 철제 다리인데, 태국 깐짜나부리의 콰이강의 다리를 닮았다 해서 '콰이강의 다리'란 별칭이 붙었다. 그러나 실제로 보니 태국에 있는 것보다 휠씬 멋졌다.
이 다리가 뜬 것은 지난 2001년 노효정이 감독한 영화 '인디언 섬머'의 촬영지가 되고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이신영(이미연)이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그녀를 변호하기 위해 모든 걸 바치는 변호사 서준화(박신양)와 이곳에서 이틀 밤을 보낸다. 그 뒤 가수 거미가 뮤직비디오 '아직도'를 찍으면서 전국적 명소로 부각됐다.
이 다리엔 젊은이들 사이에서 통하는 전설이 있다. 사랑하는 연인이 서로 손을 잡고 이 다리를 끝까지 건너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하지만 다리 중간에서 손을 놓게 되면 헤어지게 된다고 한다. 이런 얘기도 있다. 이 다리 위에서 빨간장미 100송이를 선물하면서 프러포즈를 하면 결혼에 골인한다는. 누가 만들어 퍼뜨렸는지 발상이 기특하다.
경남 김해서 왔다는 20대 후반의 여자는 다리를 건너기 전 남자친구에게 "손 놓지 않을거지. 약속해"하며 손가락을 건 다음 걸음을 옮겼다. 사랑의 마법이 통하고 있었다.
● 빨간 추억
저도에 '다리와 다리 사이'라는 횟집을 운영하는 김형용(45) 씨는 빨간색과 관련해 씁쓸한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오래된 일이지만, 우리 동네에 머리 좋은 한 형님이 사상 문제로 고생한 적이 있었어요. 좌익, 그러니까 빨갱이로 몰렸던거죠. 경찰이 그 형님 잡으려고 섬에 초소까지 지었대요. 지금은 아마 미국에 이민 가 있을걸요."
빨갱이 잡자고 혈안이 됐던 섬이 빨간색으로 들어찼으니 세상이 변하긴 변했다. 2002 월드컵 때 '붉은악마'가 우리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를 걷어냈듯이, 저도의 다리와 횟집들은 우리 의식 속의 빨간 이념을 지우고 있다.
빨강은 상징이 다채롭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불멸과 영광' '유혹과 금기' '열정과 소비'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었다. 빨강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 때문에 마법사가 이 색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저도의 빨간색을 보고 있노라면 도처에서 마법사가 '콜(Call)'을 외치며 열정을 사랑으로 바꿔놓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진다.
● 닐센 아치
새 저도 연륙교도 딴은 볼거리다. 마산시의 시조인 괭이갈매기를 형상화한 아치형 조형물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른바 닐센 아치교로, 1929년 스웨덴의 닐센이 고안한 교량 형식이다. 무지개형 대형 아치를 세워 V자형 사재(斜材) 및 사다리꼴 수평재를 붙이고, 케이블로 교량 상판을 매달아 강성과 인장력을 높인 구조다. 거제에서 교량 상판과 아치를 통째로 만들어 해상크레인을 이용해 일괄 가설했는데, 경간 길이 182m, 높이 30m의 거대한 닐센아치가 육지와 섬 사이에 올라앉는 모습은 장관이었다고 한다.
다리가 놓이기 전, 저도 주민들은 나룻배로 육지와 교통했다. 섬마을 주민들은 경비를 추렴해 공동으로 나룻배를 운행했고 아이들은 그걸 타고 육지의 학교를 다녔다. 구복리(저도) 반장 김종휴(59) 씨는 "당시 뱃사공은 육지 쪽 구복리에 있었고 주민들이 사공집을 지어주고 운행을 맡겼다"면서 "노 젓는 나룻배가 불편했지만 인정만은 가득 실렸었지"라며 먼 기억을 되살린다.
새 다리가 놓인 뒤 '콰이강의 다리'는 인도로 변했다. 차 한 대 겨우 지나던 시절, 다리 폭이 좁아 걷기를 주저하던 사람들도 이젠 마음놓고 '콰이강의 다리'를 걷는다.
저도는 더 이상 육지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다리가 놓인 후 3.3㎡(평)당 몇천 원하던 땅값이 껑충 뛰었고 시내버스가 다니고 유선TV가 들어왔다. 관광객이 늘어 횟집들도 휘바람을 분다. 주민들은 또다른 개발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저도 인근에서 '구복예술촌'을 운영하는 노향목(여·53) 씨는 욕망의 과잉을 경계했다. "저도에 새 다리가 필요했을까 싶어요. 사람들의 편리 추구가 끝이 없는 것 같아요. 빨간 다리 하나 있을때가 휠씬 운치가 있었죠. 모자란듯 아쉬움이 저도의 매력이었거든요." 노 씨는 10년 전 저도 인근의 폐교를 열린 예술촌으로 꾸민 서예가(서각) 윤환수(56) 씨의 부인이다.
● 마법의 섬
저도는 '마법의 섬'이다. 인구 100명도 안되는 곳에 두 개의 다리가 놓이고, 다리 때문에 '영화'를 누려 연인들의 데이트 명소가 된 과정이 마치 마법을 보는 듯하다. 이 섬에 들어가면 누구나 반쯤 마법사가 된다. 마법사 되기를 거부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은 물 건너 가거나 파투의 수순을 밟을지 모른다. 이는 저도를 갔다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전하는 '전설'이다.
마법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의 마법에 걸리게 되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고 한다. 눈 뜨고 처음 접하게 되는 세상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순간순간이 기쁨으로 넘친다. 신비하고 경이로운 세상이 열린다. 이게 마법이 아니고 무엇인가.
한 문화행사다. 이를 통해 저도에 '문화의 마법'이 먹혀 들었으면 좋겠다.
☞ 찾아가는 길 = 사랑하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찾아가는 길을 안내한다. 마산에서 통영·고성 쪽으로 가다 현동검문소를 지나 구산·수정 방향 1035지방도를 타고 들어간다. 구절양장 뻗어난 해안도로를 따라 백령재 반동을 지나면 작은 섬이 '저도요'하고 반긴다.
출처 : 국제신문 - 박창희 기자의 감성터치 나루와 다리
본 포스트는 박창희 기자님의 허락하에 게제합니다.
댓글